사랑은 대상을 주체와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있게 해
생명력과 사랑의 힘이라는 것은 안팎 관계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플러스 입장에 서 가지고 마이너스의 생명력만 주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내적인 한 기준이, 어떠한 포인트가 있어 가지고, 그 포인트의 내적인 목적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상대적 외적인 힘의 작용을 거치는데, 이러한 내적인 방향을 거치기 위한 작용권, 이중적 작용권의 가능성을 지닌 것이 사랑입니다. 사방적 작용을 가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은 누구나 다 좋아하는 것이다, 이렇게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떤 사람을 보게 된다면 말이예요, 얼굴이 둥그런 사람이 있고, 뭐 길게 짤쏙한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넙적한 사람이 있다구요. (웃음) '아이구, 나는 왜 이렇게 생겼어?' 이거 얼마나 불행해요. '아이고, 계란형으로 아주 아름답게 생기지. 눈도 뭐 그리려고 해도 못 그릴 만큼 이상적으로 아름답게 생겨야 할 터인데, 왜 이꼴이야?' (웃음) 여기가 찌그러진 사람도 있다 이거예요. 어떤 사람은 코만 크고 말이예요, 입은 자빠지고 말이예요, 눈은 툭 나오고…. 별의별 모양이 있는데, 그 자체를 두고 그렇게 볼 때에는 결과적 비판이다 이거예요. 전체적 비판이 아닙니다. 이런 개념들이…. 여기엔 철학적인 사상이 필요하다 이거예요.
자체를 볼 때에 그 결과적 자체 가지고 평판할 수 없습니다. 그 주체적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그 주체와 하나되었을 때는, 결과는 주체의 대상자로 올라간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말이예요, 우리 어머니가 미인같이 생겼으니 그렇지 말이예요, 못생긴 어머니가 왔으면 '푸우 ! 저것 저것 어머니 자리를 내가…' 어떻든간에 주체와 관계만 맺게 되면 주체와 대등한 자리에 올라가는 거예요. 그게 뭐냐? 힘만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힘의 세계는 밸런스(balance; 균형)한 것인데, 밸런스를 넘어서는 존속하지 않는 거예요. 안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