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목적을 위해 사랑하는 데 무한한 가치가 있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14권 PDF전문보기

더 큰 목적을 위해 사랑하는 데 무한한 가치가 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이제는 간단히 알 줄 알아요. 오늘날 인간들의 욕망이라는 것은 전부 다 파당적 입니다. 경제학자는 경제, 지식인은 학문, 정치하는 사람은 권력, 혹은 세상의 자기 욕망, 혹은 집안 문중, 혹은 역사적 배경, 환경적 요건 등등 아주 다양한 환경에 끌려 가지고 전부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것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이 욕망을 갖고 있지만 여기에서 근본문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주체다 이거예요. 내가 주체가 되어 가지고 '너도 나한테 들어와 붙어라'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인류의 병폐가 무엇이냐 하면 돈이 없어서 병폐가 아니요, 지식이 없어서 병폐가 아니요, 무슨 사회조직의 주권이 없어서 병폐가 아닙니다. 병폐가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삼고 끌어 붙이려고 하는 것이 병폐입니다.

보라구요. 개인 개인을 주장하면 플러스 마이너스 이상형성 기반이 한꺼번에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작용은 작용대로 하고 자체 완성을 하면서 그것이 또 하나의 주체 대상의 관계로 연결될 수 있는 이런 길로 가야 된다 이거예요.

모든 존재물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하나되자고 하면 스톱해 버리게 됩니다. 이 안에 들어가자면 스톱해 버린다구요. 맞서 버리고 만다구요, 전부가. 여기에선 대우주 형성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있단다면 신은 어떤 생각을 해야 되느냐? 이것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언제나 위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위하는 행로를 가야 한다는 것을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전기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전기는 어디에서 어디로 흘러 들어가느냐?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흘러 나오느냐,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흘러 들어가느냐 할 때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흘러 들어갑니다. 어떤 사람이 '어, 그거 아니야.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흘러 나오지' 하면서 암만 그러더라도, 이 원칙을 그 어떠한 주장과 폭력으로서도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이 원칙은 원칙의 순도를 순행하는 데서만이 그 효과적인 결과를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넘어 가지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 마이너스에서 플러스, 또 마이너스에서 플러스, 플러스,플러스, 플러스를 향해서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 때문이냐 하면 더 큰 목적을 위해서예요. 개인은 더 큰 목적을 위해서…. 개인은 가정목적을 위하여, 가정은 종족목적을 위하여, 종족은 국가목적을 위하여, 국가는 세계의 목적을 위하여, 세계는 영계가 있으면 하늘땅의 목적을 위하여, 하늘땅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그 자체는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인 것입니다.

전부 다 사랑의 진로가 있습니다. 하나의 세포에서부터, 미생물이면 미생물에서부터 전부가 하나의 지류와 같이 되어 가지고 골수로 흘러가 대강(大江)을 이루고 대해(大海)로 연결될 수 있는 위대한 사랑의 흐름이 있나니, 이 흐름의 원칙과 내용을 공인하지 않고는 대해로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자, 이런 것을 여기 선 사람은 일찌기 알았기 때문에 우주를 새로이 혁명해야 되겠다 한 겁니다. 대혁명이 벌어지나니 그 혁명을 하더라도….

여러분 그렇잖아요.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를 대해 가지고 진짜 사랑할 때는 말이요, 꼬집어도 그거 싫지 않다는 거예요. 그거 잘 모르지만 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여러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진짜 사랑의 매는 때려도 이거 맛있다는 거예요, 사랑을 위하여 고생하는 것은 진짜 무한한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보는 거예요.

효자다 할 때 무엇 갖고 효자라해요? 돈 갖고? 아이고, 어머니 아버지 늙어서 소고기 백반 좋아하시니 매일 소고기 백반 사다 주는 것이 효자다 할 수 있어요? 그에 앞서 사랑, 어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돼요. 많으나 적으나 소고기를 사다 드렸다면 사랑의 흐름이 그 안에 연결되어 있어야 해요. 사랑이 주체가 되어 가지고 그의 부체로 사랑과 하나된 그 고기를 부모 앞에 드리면 부모는 '음, 내 아들 참….'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다구요.

효자라는 것은 반드시 고생의 길을 통합니다. 수난의 길을 통하는 데는 그 수난과 고생을 초월하여 가치적 내용으로 소화시켜 어떤 자극적인 힘의 원천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부과시킬 수 있는 그 주체가 무엇이냐? 사랑이다 이거예요. 부모를 위하는 사랑, 이 원칙을 부정할수 없을 거예요. 암만 훌륭하신 학자님들도 이것을 부정할수 없을 것입니다.

애국자는 무엇이냐?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국민을 사랑하고 주권자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이 우주 원칙의 사랑의 요소와 일치화할 수 있는 화합된 실체로서 국민을 품는 것입니다. 그 백성을 품더라도 사랑하는 데서는 두드리면 두드려도 좋고, 머리를 때려도 좋다는 거예요. 손이 와 닿아도 싫지 않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