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회는 영원한 사랑을 추구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15권 PDF전문보기

통일교회는 영원한 사랑을 추구해

그러면 통일교회는 도대체 뭘하는 곳이냐? 그게 문제예요. 과거의 종교와 통일교회는 뭐가 달라요? 과거 종교는 독신생활을 강조했는데 통일교회는 합동결혼식을 강조한다구요. 그게 뭐예요? 옛날로 보게 되면,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단이 아니지요. 국민학교 1학년을 보게 된다면 2학년은 이단이예요. 그게 이단이예요. 끝이 다르다구요. 출발도 다를 것 같으면 이단이지요. 국민학교 2학년에게 3학년은 이단이예요. 전부 이단이예요. 자기 중심삼고 이단이다 이겁니다.

그러면 이단이니 정통이니 하면서 논할 수 있는 그 주류사상은 뭐냐? 장로교로 말하면 전통적 내용이 칼빈의 뭐예요? 예정론이라고 하는데 그것으로 될 수 없다 이거예요. 그것은 부속품도 안 되는 거예요. 감리교는? 웨슬레의 그 신앙도 부속품도 안 되는 거예요. 부속품도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주류는 뭐냐? 순수한 하나님의 이상적 사랑이 들어 있어야 돼요. 이것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저 강도질을 하다가도 예수를 믿고 천당 간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강도들을 두고 뭐라고 할까? 개인주의라고 해도 이런 개인주의가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종말이 미국 같은 나라에는 와 버린 거예요.

그러한 종교라는 것은 남아질 수 없다 이거예요. 어떤 힘을 통해서라도 깨뜨려야 돼요. 그래서 공산주의라는 게 나와 가지고 산산이 밟아 치우고, 기성교회의 밑바닥에 들어와 가지고 전부 다 들이 밟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래 내가 말하는 것이 맞느냐, 안 맞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라구요.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구요. 그렇게 대도(大道)의 표준을 정하고, 그 대도로 향하는 방향성은 이런 내용을 지녀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 방향성에서의 사랑의 본질은 혁명할 수 없다 이거예요.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이 사랑한다는 사랑은 전부 다 뭐냐 하면, 공산주의나 자유주의 색채가 나와 가지고 그것을 흐려 버렸다 이거예요. 사랑한다고 하게 되면 눈으로 보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구요. 몸과 마음으로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랑의 표제라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 임시가 아니라 영원을 표준하고 나가야 된다구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풀리는 거예요. 모든 것이 벌어지는 겁니다.

자, 이런 걸 볼 때, 통일교회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냐? 이런 역사성을 두고 회고해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 자리에 있느냐?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어디로 달리고 있느냐? 오늘 여기 청파동 교회에 올 때 '아, 선생님이 오늘 떠난다고 하니까 선생님한테 한번 가 보자' 했다면, 선생님을 보면 뭘해요? 떡을 줘요, 돈을 줘요? 뭐 아무것도 없다구요. 도리어 욕을 퍼붓고 듣기 싫은 소리 하기가 일쑤지, 좋은 소리로 칭찬하고 '아이구, 그동안 고생했으니 오늘부터 보따리 싸서 갖다 놓고 쉬소, 노소' 이런 말은 절대 안 해요. '더 고생해라, 이 쌍것들!' 그러고 있다구요. (웃음) 그게 뭐가 좋아요? 좋다 하면 그게 미친 거라구요.

그게 무엇이냐 하면, 다 없어지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골수의 사랑이 여기에 깃들어 있다 이거예요. 인간이 추구하는 사랑의 자국이 여기에 깃들어진다 이거예요. 이렇게 되니까 무엇이 발을 잡고 채더라도 마음은 좋아서 이리로 가려고 한다는 거예요. 뒤에서 누가 몸뚱이를 집어 끌어 당기더라도 마음은 앞으로 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게 무엇이예요? 그러면 어떤 것이 강해야 되느냐? '아이구, 다리 하나 끌고 가는데 사랑이건 무엇이건 나는 모르겠다' 하면 다 포기되는 거예요. 죽음의 길도 넘어서 서슴지 않고 가야 할 것이 사랑의 길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 축복가정들 가운데에는 '아이구, 선생님이 뭐 약혼을 해주시더니 저 사람은 좋은 신랑을 얻어 주고 나는 왜 요래? 꿈에도 생각지 않은 사람은 왜 얻어 줬소?' 할는지 모르지만, 사랑이상이라는 걸 생각할 때는 잘난 사람만 사랑하고 못난 사람은 사랑 안 하게 되어 있나요?

부모가 말이예요, 첫번째 애기는 일등 미남이었는데 이번에는 코가 찌그러지고 쭈그렁이 같은 추남을 낳았다 할 때 '이놈의 자식! 너는 추남이니 추남만큼 사랑한다, 이 자식아!' 하고, 젖 달라고 울 때도 '왜 울어?' 그래요? 그게 사랑이예요? 반대예요. 반대라구요. '네가 못생겼으니 일생을 염려할 거 아니냐? 요 코가 좀더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하고, 젖을 먹이면서도 '어서 먹고 잘 커라, 너의 형님은 젖을 못 먹고 울었지만 너는 앞으로 일생을 살면서 얼마나 못났다고 마음으로 그럴 것이냐?'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일생을 생각한다 이거예요. 지금이 아니예요. 일생을, 미래를 두고 사랑한다는 거예요. 미래와 연결 되어 있다구요, 사랑은. 깊은 사랑은 현실과 연결되는 것도 물론이지만, 이것은 반드시 먼 미래와 연결되는 거예요.

왜 효자를 좋다고 하느냐? 부모와 자식지간에 영원을 두고 사랑의 내연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충신이 뭐냐? 그 나라를 두고 영원히 사랑을 논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성인의 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를 놓고 영원한 사랑을 소개하기에 족하다, 그렇게 보는 거예요. 그말이 맞소, 안 맞소? 그게 맞아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