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본질은 위하는 것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29권 PDF전문보기

사랑의 본질은 위하는 것

가정이 기지인데 부모를 보게 되면 부모는 뭐냐 하면 종적 횡적 연결하는 센터다 이거예요. 하늘과 땅이 연결된 센터라구요. 그다음에 자녀들은 평면적 세계 인류를 대표한 센터다 이거예요. 하늘과 땅의 모든 사람을 대표한 센터다 이거예요.

이것은 하나님대신 존재하고, 이건 인류 대신 존재한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아들딸은 인류를 대신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래 가지고 전부 다 축소해야 된다구요.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하느냐? 종교를 중심삼고 완전히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가는 그 본질적 성격은 어디 있느냐? 자기를 위하는 데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구요. 전부 다 위하려고 하는 데서 사랑이 번식됩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자기 중심삼은 사랑은 전부 다 소모되지만 위하는 사랑은 번식됩니다. 커 간다구요.

그러니까 위해서 사랑하려는 데는 번식이 벌어져 자꾸 확장되지만 자기를 위하려는 사랑에서는 자꾸 축소가 된다 이거예요. 그거 알겠어요? 사랑의 본질은 위하려고 할 때 멀티플(multiply;늘리다) 하지만 위하라고 하는 데서는 점점 더 고잉 다운(going down;내려가다), 디미니쉬(diminish;감소시키다)한다는 걸 알아야 돼요. 현실적으로 볼 때, 현실은 사악한 거예요. `날 사랑해라. 헤어지지 않고 사랑해라' 하게 되면 그것은 자동적으로 떠나가는 거예요. 그러나 말을 하지 않고 서로서로 남을 위해 주면 사랑은 점점 커 가는 것입니다.

왜 위하라고 하느냐 하면 사랑을 번식시키기 위해서, 사랑의 유대를 확대시키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친구가 뭐냐 하면 나를 위하는 사람이라구요. 좋은 남편은 나를 위하는 사람이라구요. 마찬가지예요. 좋은 아내가 뭐냐 하면 남편을 위하는 사람이라구요. 여자나 남자나 서로 위하는 것이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나쁘다는 것은 자기 중심삼고 자꾸 하라는 것이요, 좋은 것은 뭐냐 하면 남을 위해서 자꾸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건 현실 생활에 맞는 틀림없는 정의다 이거예요.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요, 전부 다 위하려고 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라구요. 겸손한 사람은 어디 가든지 환영받아요. 어디 가든지 살아 남을 수 있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을 위하는 자리가 제일 안전한 존재기대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한 존재 기반을 찾아가려니 그걸 취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런가 안 그런가 여러분들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 거라구요.

이래서 스마트한 레버런 문은 위해서 살라는 정의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거 미국 청년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지요? 여러분들대로 가다가는 사탄편으로 가는 것이고 선생님 하는 대로 가면 하늘로 가는 거예요. 어때요? 거 레버런 문은 자기 사랑하고, 자기 주장하고, 자기가 독재하려고 그러지요? 그래서 그런 거예요? 독재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