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고통을 사탄에게 넘겨 주자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53권 PDF전문보기

역사적인 고통을 사탄에게 넘겨 주자

그러면 하늘은 누구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나님은 인류와 더불어, 인간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인간이 누구냐 하면 아담해와의 후손입니다. 그러한 연고로 그 고통과 슬픔은 간접적으로 하늘로 돌아간 거예요. 간접적으로 하늘로 돌아갔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택한 한 자녀를 세우고 종을 세우고 충신을 세워서, 이것을 노아 때부터 사탄편에 돌리게 된 것입니다. 노아에게서 이 한을 종결짓고 사탄편으로 돌이킨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인 것입니다. 네 개체의 한을 세계적인 사탄에게 넘겨 주고, 내 가정의 한을 사탄세계의 가정의 한으로 넘겨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예요.

그래서 노아를 세워 가지고 어떻게 했느냐? 하늘은 사탄세계 앞에 한을 넘겨 주자는 거예요. 넘겨 주는데는 무조건 넘겨 줄 수 없어요. 택한 사람을 세워 가지고 그 환경 가운데서 핍박과 고통을 받게 하는 거예요. 일대의 고통을 그 환경으로부터 받게 해 가지고 역사적인 모든 개인의 고통─ 개인적인 역사적 고통─을 사탄세계에 넘겨 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노아의 승리는 노아가정 일대의 승리가 아니라 역사적인 승리예요. 아브라함의 승리는 아브라함 일대의 승리가 아니고 역사적인 승리입니다. 모세의 승리도 모세 일대의 승리가 아니고 역사적인 승리이며, 예수의 승리도 예수 일대의 승리가 아니고 역사적인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으려니, 개인이 승리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 개인시대 섭리의 책임을 짊어진 사람을 역사적인 시련 가운데 집어 넣는 거예요. 그 시대 전체 앞에 동서남북 사방에 널려 있는 환경의 무리들에게 역사적인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역사적인 모든 환경의 고통이라는 것을 갖다 몰아치는 거예요. 사방으로 들이 조이는 거예요. 모가지를 들이 조이는 거예요. 그렇게 해도 죽지 않아야 돼요. 망하지 않아야 돼요. 곧게 나가야 됩니다. 이런 자리에서 승리를 하게 된다면 거기에서 개인적인 자체가 복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닦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복을 받고야 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탄을 심판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사람은 본래 천사를 지배할 수 있어야 되고 만물을 지배할 수 있어야 돼요. 천지를 지배하고 만물을 주관해야 된단 말이예요. 자녀를 가져 가지고 주관하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되려면 복받은 입장에 서야 돼요. 아담 해와는 천지의 주인이니만큼, 주인된 사람은 자녀 앞에 줘야 하는 동시에 종한테도 줘야 된단 말이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개인의 책임을 짊어진 사람은 역사적인 환경에 있어서 핍박을 받아 가지고 승리를 하여 남아진 자가 되어 가지고 그 일대에 있어서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복을 종들 앞에 나누어 주고 아들딸 앞에 나누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 비로소 사탄한테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축복하여 뜻 앞에 복의 기관으로 삼았다는 거예요. 복의 기관이예요. 역사적인 복의 기관이예요. 노아는 개인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복의 기관이예요. 모세는 민족적인 복의 기관이니만큼 모세를 떠나는 민족은 망하는 무리예요. 예수님은 세계적인 복의 기관이니 만큼 예수를 떠나는 세계 인류는 망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에, 우리 통일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이 시대적인 환경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됩니다. 지금 개인적인 책임시대로서 넘어가고 있느냐? 가정적인 책임시대로 넘어가고 있느냐? 국가적인 책임시대로 넘어가고 있느냐? 세계적인 책임시대로 넘어가고 있느냐? 천주적인 책임시대로 넘어가고 있느냐? 그리고 오늘날 선생님이 지니고 있는 책임무대와 책임사명의 한계는 어느 정도냐? 그것을 잘 알 거예요.

어느 단계를 향하여 넘어가고 있느냐? 개인적인 입장에서 개인이 서기 위해서는 가정적인 환경이 없어서는 못 서는 거예요. 노아가 가정적인 여덟 식구의 환경을 갖추어야만 개인이 설 것이었는데, 서지 못해서 깨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가정이 서기 위하여서는 열두 가정의 기반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모세도 그랬고, 예수도 그러려고 하다가 망했다는 거예요. 열두 지파가 서기 위해서는 기반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개인을 소생이라고 보면, 예수 가정이 서기 위한 열두 제자의 가정─사도의 가정이 장성이요─과 120문도─120문도는 완성입니다.─가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는 민족적인 기반을 잡을 수 없다는 거예요.

열두 지파는 모세를 중심삼고 민족 대표로 섰으나, 예수시대에 있어서는 그 한 단계를 넘어서서 한 단계 높은 120문도를 위주로 하여 세계적인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 당시에는 120문도와 같은 종족적인, 혹은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세계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이 기준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다음에 내적인 이 기준을 세계의 탕감조건으로 딱 예수 일대에 세워 놓고는 외적으로 맞추어야 된단 말이예요.

그리고 `우리의 가정을 본받아라' 이렇게 나가야 되는 거예요. 예수를 위주로 한 사도들이 가정을 가졌으면 이렇게 말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 사도들의 가정을 본받아라. 우리 사도들의 이념을 본받아라. 우리 사도들의 생활을 본받아라. 우리 사도들의 충성심을 본받아라' 이렇게 나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사도를 거치고 이스라엘 민족을 거쳐 나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내적인 환경을, 내적인 조건을 완결해 놓으면 외적으로 동서남북을 통하여 전부 다 본받으려고 하는 거예요. 기독교가 이것을 하려고 싸워 나오는 거예요.

사도의 정신을 본받고 예수의 정신을 본받아야 하는데, 이스라엘 나라의 정신을 본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의 전통, 정신을 본받아야 할 텐데 이스라엘 나라가 없었다 이거예요. 공중에 떠 있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있었어요? 예수의 정신을 본받고, 사도들의 정신을 본받고, 이스라엘 나라의 정신을 본받아야 된다 이거예요. 민족 없는 나라가 되었어요. 그래 다 깨져 나갔으니 그 나라의 정신을 어떻게 본받느냐?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을 잘 알아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