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따라가는 자녀의 도리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55권 PDF전문보기

하늘을 따라가는 자녀의 도리

오래 참고 오래 싸우면서 전체를 위할 수 있는 자기의 모습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면 하늘이 자연히 세워 주십니다. 인간이 아무리 자기가 이렇게 섰다고 자랑해도 안 돼요. 자기가 세워 놓았댔자 넘어진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세워 주지 않더라도 하늘이 세워주면 반드시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지도자라도 지도자 그 자체가 자기를 세우는 그런 자리에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체가 자기를 그 자리에 세우지 않더라도 그 환경이 세워 줄 수 있는 날을 맞이하여, 환경 전체가 그를 세워 줘 가지고 기뻐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됩니다. 그럴 때 거기에 서야 그 사람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모든 것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주장해 가지고는 안 돼요. 자기 주장해 가지고는 절대 하나님의 아들딸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복귀섭리를 해 나오면서 어느 한때 하나님께서 자기를 주장해 봤느냐 이겁니다. 자기를 주장해 봤어요, 언제? 하나님이 자기를 주장한 아들딸도 없었거니와 주장해 보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심정과 그 사연을 통할 수 있는 아들딸이 없었습니다. 없었다구요. 그런 아들딸이 없음과 동시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자기의 사연을 주장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 사연을 하나님이 만약에 주장한다면 인류의 모든 사정을 다 접수해 놓고, 다 풀어 놓고, 만민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서야 맨 나중에 그 사연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마음이예요.

그런데 우리들은 나만 알아요. 나만 안다구요. 자기 사연과 자기 사정에 못박혀 있다 이거예요. 내가 어려우면 어려운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내가 조금만 기쁜 일이 있으면 그 기쁨을 전체의 기쁨인 듯이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뻐도 하늘이 나와 더불어 기뻐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고, 슬퍼도 하늘이 나와 더불어 슬퍼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해야 됩니다. 그러면서 길이길이 참으면서 내 갈 길이 바쁘므로 오늘을 내일을 개척하는 시간으로 준비하기 위해서 노력할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망하지 않아요. 그렇게 싸워 간 사람이 만일 땅 위에서 죽는다 할지라도 그가 죽은 다음에는 반드시 칭찬받는 거라구요.

예수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앞에 몰렸고, 유대교단 앞에 몰렸고, 수많은 제자들한테도 배척을 받아 갈 곳 없어 십자가에 돌아갔지만,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그 마음을 품고 그냥 갔다는 거예요. 내가 말할 것이 많지만 너희들이 감당하지 못한다 이거예요. 토로할 사연이 천천만만이라도 있었지만 하늘이 알아주어서 하늘이 '예수의 사연이 이랬다'고 변명할 수 있는 그날을 바라보면서 참고 나갔습니다. 그것이 예수의 위대한 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자기의 소원을 몰라준다고 그것으로 낙망하고 섭섭해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사연을 알아줘 가지고, 그 사연을 알 수 있는 사람이 나오면 하나님이 '예수의 사연이 이랬다'고 통고할 수 있는 그날을 바라보면서 자기의 사연을 품고 다닌 예수였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그런 예수의 사연을 잘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사연을 풀고, 예수의 소원을 풀기 위해서, 역사적 배후에서 하늘은 예수의 뜻을 세워 나가는 길에서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중의 친구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말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나의 친구가 되고, 말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천운이 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환경을 거쳐 나간 것입니다. 이런 생활태도를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묵묵히 우리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 책임을 다했더라도 부족함을 느끼고, 좋으면 좋은 것으로서 하늘이 좋아하기 전에 내가 좋아할 수 없고, 나쁘면 나쁜 것으로서 내가 나쁘기 전에 하늘이 나쁠까봐 염려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망각하고 전체를 위해서 충성할 수 있는 실적 기준을 갖고 나가야 된다구요 그래야만 그것이 하늘을 따라가는 자녀의 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