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윤국 목사의 행적과 일화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92권 PDF전문보기

문윤국 목사의 행적과 일화

지금 파주라고 하는 곳에 선생님의 뭐지요? 아,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동생, 그분을 뭐라고 그래요? 「작은할아버지라고 합니다」 작은할아버지! 유명한 목사였어요. 그리고 애국자, 일본과 싸웠던 애국자지요? 3·1운동 때 북한에서 기독교를 대표했던 지도자였어요. 3·1절 독립선언문을 만들 때 말이예요, 선언문을 작성한 다섯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어요. 문장이 뛰어나고 말이예요…. 선생님이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그 할아버지가 말이예요, 체격이 참 좋았어요. 선생님은 비교도 안될 만큼 좋았어요. 체격이 큰 멋진 남자였어요. 진보적이었어요. 일본헌병한테 잡혀서 2, 3년간 감옥살이를 했어요. 그래서 자기의 재산을 모두 투자해서….

그런데 그때에는 일본 사람들이 금융조합을 세워서 농민에게 돈을 빌려 줘 가지고 갚지 못하면 토지를 빼앗아 가지고 많은 일본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정착시키고 한국 사람들은 만주로 쫓아냈어요. 그것을 한국 사람들은 모두 반대했어요. 그 할아버지가 반대를 주도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그때의 시세로 말하면 7만 엔, 8만 엔이나 되는 자기 형님의 토지를 말이예요…. 8만 엔이면 큰돈이었어요. 선생님이 그 당시 일본에 갈 때 3개월 분의 학비로 가지고 간 것이 1백 엔이었어요, 1백 엔. 그때는 그것도 큰돈이었어요.

그런데 8만 엔이란 돈을 상해임시정부의 군자금으로 헌납했던 거예요. 일본 헌병이 알면 큰일 나기 때문에 그 돈을 전부 놀음을 해서 잃어버렸다는 소문을 퍼뜨려 놓고는 밤중에 도망을 갔어요. 그래서 북한에 계속있으면 큰일이라고 해서 1945년 이전에 남쪽으로 왔어요. 그때도 그 할아버지는 집이고 뭣이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제1의 주요 용의자였어요. 일본 헌병이 찾아다니기 때문에 떠돌이같이 떠돌다가 정선이라고 하는 곳에서 돌아가셨는데 문씨 성을 가진 제자의 산에 묻혔어요.

그 할아버지가 문장로의 꿈 가운데 나타나서 자기는 어떻게 해서 어떤 자리에 묻혀 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준 거예요, 그것이 아주 확실했기 때문에 글을 써서 가르쳐 준 그 주소대로 편지를 냈어요. 편지를 내면 반드시 그 답장이 오지요? 그렇게 해서 그 무덤을 찾아서 파주라고 하는 곳에, 지금 흥진이의 옆에 이장을 했어요. 그분은 애국자였기 때문에 영적으로 나타나서 자기가 죽어 묻혀 있는 곳을 가르쳐 줄 수 있었던 거예요. 그렇게 보면 선생님의 가문이 애국자의 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런 한국적인 입장에서 전통적으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