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 중심으로 본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03권 PDF전문보기

참사랑 중심으로 본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여러분, 보라구요. 역사시대에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전부 다 실패로 끝났습니다. 지구가 생겨난 역사를 45억 년으로 잡고 인류가 생겨난 역사는 2억 5천만 년 이상으로 잡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에 하나님의 섭리를 한 번도 이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 기간에 하나님이 편안했겠어요, 슬펐겠어요? 「슬프셨겠습니다」 하나님이 슬펐다는 것은 무니들만의 생각입니다. 기성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왜 슬퍼해? 하나님은 절대자이기 때문에 못 하시는 게 없어! 왜 슬퍼해야 돼?' 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기성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이 절대자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기쁨을 취하실 수 있느냐? 그래서 거기에 필요한 것이 뭐냐 하면, 왜 하나님이 창조를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 창조했어요? 참사랑 때문입니다. 아무리 절대자라고 하더라도 혼자서는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서로 주고받아야 돼요. 아무리 절대적인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뭐냐 하면 참사랑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을 닮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슬퍼하고 기뻐하고 춤추고 하는 것들이 어디서 왔어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들이 거기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도 혈통이 있어야 되고, 사랑의 심정이 있어야 되고, 오관이 있어야 되고…. 외적인 오관과 내적인 오관이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자신을 희생하는 일이 있더라도 참사랑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신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참사랑을 원하지요? 문제는 간단합니다.

하나님도 슬프고도 기쁜 하나님, 인격적인 신이라고 하는 논거를 사랑이라는 개념을 세워 놓고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의 신학에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참사랑을 중심삼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도 마찬가지의 결론입니다. 어떻게 우리 인간, 남자와 여자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느냐? 참사랑을 중심삼을 때 그 말이 가능한 것입니다. 먼저 파트너가 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둘이…. 참사랑을 중심삼고서야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해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고 할 수 있고, 하나님도 여러분을 대해서 '너는 내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결론입니다. 그래야 어느쪽에서든 불평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현대 기성신학에는 이런 관이 없습니다. 절대자 하나님하고 나하고 하나되면 나도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어요? 사방이 없어요. 종적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한다고 하게 되면 나는 절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 제일주의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신학적 폐단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독선적입니다. 자기가 믿는 종교만이 제일이고 다른 종교는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절대적인 하나님은 한 교단이고 한 민족이지 무슨 여러 가지야?' 하겠지만, 아니야!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는 전체가 하나입니다. 그걸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레버런 문은 어디에 가더라도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안 하십니다. 가고픈 데 다 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못 갈 데가 어디 있어요?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거짓된 사랑은 그렇게 못 합니다. 원리적인 것은 무엇이나 간섭해도 좋아요. 대통령이 헌법을 만들어 놓고 매일같이 가서 그것을 뒤져요? 법이 대통령을 대신하는 거지요. 그게 원리입니다. 원리주관권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헌법을 중심삼은 그 아래에 있는 주관 세계다 이거예요. 마찬가지입니다.

아까 말한 대로, 몇억 년 된 역사 가운데 하나님이 지금까지 기쁜 한 날을 못 봤어요. 슬퍼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얼마나 심각해요? 한 번도 하나님이 사랑의 맛을 못 봤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해요! 한번 생각해 봐요. 수백 년, 수천 년이 아닙니다. 길고 긴 세월을 기다려 온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기다렸어요? 나를 위해서입니다. 나 개인을 위해서 그렇게 기다린 것입니다. 가정·국가·세계를 위해서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나를 위해서 그토록 긴 시간속에서 그 고통을 참아 온 것입니다. 왜 그런 자리에서 도망갈 수 없느냐? 참사랑을 중심삼고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예」

모든 피조물이 그 참사랑을 부정함으로 말미암아 쫓겨난 것입니다. 온 피조물이 쫓겨났다는 것은 창조의 개념이 없어진 거와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영원하고, 절대적인 존재이신 하나님의 입장을 취할 수 없었어요. 얼마나 그 참사랑을 찾고 찾고 찾았으며, 냄새 맡고 싶었고, 듣고 싶었겠어요? 그러다 보니 얼마나 지치신 하나님이시겠어요? 내적 오관 외적 오관, 이 두 오관이 지쳤다구요. 그런 처지에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그런 하나님의 심정을 느껴 봤어요? 하나님의 그런 심정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할 수 없다구요. 하나님의 그런 깊은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도 하나님의 그런 처지의 심정을 실제로 느낀 것을 얘기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심각할 때는 기도를 안 합니다. 기도를 못 하는 것입니다. '할 일도 못 해놓고 무슨 기도야, 이놈의 자식아!' 하는 소리를 들을까봐 못 하는 것입니다. 일을 하면서 힘이 부족할 때는 '도와주고 싶으면 도와주십시오' 하고 부탁할 수는 있으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기도를 못 합니다. 기성교인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내 아들딸, 우리 교회, 우리 교파를 좀 도와주소!' 합니다. 도적놈들이예요. 미리 하나님이 다 만들어 주신다구요. 소련이 저렇게 될 줄 몰랐고, 독일이 저렇게 될 줄 몰랐고, 북한이 저렇게 될 줄 몰랐지만 다 준비해 주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