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는 몸세계와 마음세계의 투쟁역사
그러면 종교를 내적이라 하게 되면 그 가외의 정치·경제·문화 풍토를 중심삼은 것을 외적이라고 하게 되는데, 내적인 종교에도 소망이 없고 외적인 정치세계에도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내적 정신과 외적 몸뚱이가 있는데, 그 내적인 정신세계에도 소망이 없고, 외적인 몸세계에도 소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러냐? 우리 몸 마음이 혼란된 기준에서, 잘못된 입장에서 뿌려졌기 때문에 그것이 세계적으로 결실한 것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내적 정신적으로 통일권을 추구하던 종교권과 외적인 정치 풍토를 중심삼은 정치세계의 두 계열이 수확기, 종말시대로 흘러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본래 몸과 마음이 갈라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있다면 몸 마음이 갈라질 수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다면 절대적으로 하나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 거라구요. 그런데 그렇게 못 됐다는 사실은 모든 이론적 추구에 있어서 혼란상이 벌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 마음이 투쟁개념을 갖고 있는 것을 볼 때, 절대적인 하나님이 지었다면 생각이라든가 창조이상적 목적관이 절대적으로 하나돼 있어야 할 텐데 하나 못 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이원론의 기반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 마음 가운데에는 선악이 같이 있다고 하게 되는 거지요.
그러므로 몸과 마음이 갈라져 가지고 심어진 것이 우리 인류 조상입니다. 아담 해와가 몸과 마음이 갈라졌기 때문에 그 후손도 몸과 마음이 갈라져서 싸우는 후손이 아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잘못된 씨가 뿌려진 것이 자라 가지고 수확기쯤에 와서는 이것이 전부 다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내적 세계 외적 세계를 중심삼고 투쟁해 나온 것입니다.
민주세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내적인 세계형이요, 공산세계는 보이는 유물론의 세계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세계는 `물질이 먼저다, 하나님은 없다.' 하는 것입니다. 이 두 세계가 상반된 방향을 취해 나온 것입니다. 서로 방향이 달라요. 내적인 길이 이렇게 가면 외적인 물질세계는 반대입니다. 방향이 완전히 180도 다르다구요.
이 둘 가운데 신이 관계되어 있는 세계는 외적으로 가는 세계일 것이냐, 내적인 길을 가는 세계일 것이냐? 이렇게 볼 때, 그래도 내적인 면의 세계가 선한 쪽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왜? 몸을 매일같이 간섭하고 명령하는 것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밤에 자다가도 나쁜 생각을 하면 양심이 `야, 이놈아!' 하고 후려치는 것입니다. 어느 한 촌시라도 용서하는 법이 없습니다. `네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너는 더 선한 입장에서 내일의 희망적인 길을 찾아가라.'고 재촉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렇기 때문에 신이 있다면 신은 마음세계에 인연을 맺고 인간과의 관계 확대를 위한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마음세계를 중심삼고 개인적 관계에서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적 관계를 신의 편에 기여할 수 있는 세계적 판도로 꾸려 나갈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권은 하나님께 속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몸뚱이는 무엇이냐? 몸뚱이는 하나님의 양심적인 마음 앞에 180도 다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몸뚱이는 마음이 원하는 정반대의 길을 가려고 해요. 배고프면 아무거나 먹으면 되는데 좋은 것을 먹으려고 하고, 오늘 좋은 것을 먹었으면 내일은 더 좋은 것을 먹으려고 합니다. 더 좋은 것을 먹기 위해서 남의 것을 탕두질도 하고 자기 향락의 길을 위해서 죽음도 개의치 않고 별의별 놀음을 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역사적 과정에 있어서 투쟁역사는 몸뚱이가 행동하는 반경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상반된 두 체제의 틈바구니에서 자리를 잡아 가지고, 몸과 마음의 두 세계를 주장해서 본래 하나님의 절대적인 이상적 방향을 갖춰 갈 수 있는 개인적 시대, 가정적 시대, 국가적 시대, 세계적 시대를 못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서 지금까지 세계가 가을절기를 향해서 찾아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