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헌신 총헌납 하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91권 PDF전문보기

총헌신 총헌납 하라

이번에 30억 이상 들어갔지?「33억이 들었습니다.」책값이?「예. 그 때 행사의 책값만 해도 2천5백만 원 됩니다.」그렇게 나가지.「지난번에도 보고드렸습니다만, 온 사람들이 내용은 모르지만 그 책이 품위가 있고 좋다 보니까 함부로 둘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잘 놓아두었다는 것입니다. 참 대단하다고 그럽니다. 밖에서는 그런 책을 보기 어렵습니다.」그것이 앞으로 가보예요, 가보. 그 책하고 보자기를 잃어버리면 안 돼요. 그 보자기도 가보라구요. 「그 책을 본인들은 보지 못하더라도 집안에 대학생도 있고 할 테니까 아마 두고두고 자기 관심 분야에 따라서, 세대에 따라서, 또 자기 상황에 따라서 어려울 때는 그 책을 보면 해답이 나올 수 있고…. 정말 가보로서 가문에 길이길이 남을 책입니다.」그 길을 다 가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읽고 감동을 받으면 훈시를 유언으로 하는 거예요.

오늘 읽은 중생 문제, 그게 얼마나 심각해요? 기독교에서는 중생이라는 말만 알았지, 중생의 내용을 제대로 알아요? 복귀가 얼마나 힘들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불쌍하다는 말이 맞습니다. 기가 차지요. 하나님도 선생님이 아니면 해방이 안 됩니다. 인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제멋대로 생각하지요? 제멋대로 선생님을 대하고 말이에요. 그러니 조상으로부터 천년 만년 다 그 말씀을 보게 해야 돼요. 선생님이 고생했어요? 세계에 있는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이 가면 다 백인이고 흑인이고 간에 다 선생님의 말을 들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미국 식구들만 하더라도 미국이 그렇게 선생님을 못살게 했는데 선생님은 여전히….

그때 어떻게 살고 자기들은 어떻게 맞고 하는 것을 이제 자기들이 알게 되었으니 선생님이라고 하면 전부 다 숙연해지는 것입니다. 본마음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서양 사람들이 더 열심히 할지 모릅니다. 언제나 습관화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언제나 자기가 교회 들어와서 만났을 때의 선생님으로 알고 있어요. 거기에서 태산을 넘어서 이렇게 되었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아요.

오늘은 제주도 일주를 한번 해 보면 좋겠다구, 날씨가 좋으면.「예. 좋겠습니다.」날이 좋은가?「알아보겠습니다.」제주에 가서 밥 먹어? 어머니는 못 갈지도 모릅니다. 어머니는 일본에서 상당히 피로했던 모양이니까 못 나갈 거예요.「신경을 너무 많이 쓰셔서….」안됐어도 또 어머니가 미국에 가서 해야 됩니다. 내가 일본에 갔으면 반대가 얼마나 많았겠어요? 미국도 그렇지요.「아버님, 미국에서 열여섯 군데 하십니까?」40군데는 너무 고단할 것 같아서 그렇게 한 거야. 열여섯 곳이야 뭐 한두 곳만 지나면 계속되는 날이기 때문에 그렇게 걱정되지 않아요. 어머니도 지금은 많이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대회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염려를 안 합니다. 가서 얘기하는 것은 말이에요. 그러기 위해서 정성을 어떻게 들이느냐 하는 것이 문제지요. 그걸 어머니가 알아요. 자기가 원고를 얼마만큼 성의 있게 읽느냐 하는 그 비준에 따라 청중의 감동과 감화는 비례된다는 것을 안다구요.

그래, 통일교회 교인들이 하는 일을 영계가 후원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수련생은 식사시간이 9시까지예요? 식사하고 수련을 시작해야지요. 언제 돌아가요?「오늘 돌아갑니다.」여러분이 올 때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왔어요, 못 만난다고 생각하고 왔어요? 어느쪽이에요?「부모님이 오시는 것은 모르고 왔습니다.」일본은 총동원, 총헌신, 총헌납 하지 않으면 어머니로서의 사명을 못 합니다. 지금은 대전환기입니다. (*부터 일본어로 말씀하심) 자, 우리 식사하고 헤어지자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