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시는 예수에 대한 우리의 책임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1권 PDF전문보기

다시 오시는 예수에 대한 우리의 책임

6천년의 소망을 갖고 찾아오시는 예수님이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 때에 인간들이 해야 할 책임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의 마음과 예수의 서러움과 예수의 수고의 짐을 실체적으로 대신 맡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4천년의 수고를 대신하여 4천년의 서러움을 풀어드리기 위해 이스라엘민족 앞에 오셨던 예수님을 이스라엘민족이 믿지 않고 반대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됐던 것입니다.이와 같이 예수님을 아버지의 수고와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4천년의 서러움을 풀러 오셨던 분으로 알고 믿고 모실 수 있는 사람이 이스라엘민족 중에 없었던 연고로 예수는 십자가에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고로 이 일을 완결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재림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6천년 역사를 총결산해야 하는 끝날의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삼위신 앞에 홀로 서서'하나님의 서러움을 나의 서러움으로 맡겨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수고를 나의 수고로 맡겨 주시옵소서.하나님의 소망을 나의 소망으로 맡겨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여러분은 한 개체이지만, 하늘 땅을 대신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고 예수의 올 날을 준비하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세계의 크리스찬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하는 여러분들은 오셨다가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시 한번 더듬어 보아야 합니다. 예수가 나실 때와 예수가 사실 때와 예수가 가실 때의 사정이 여러분의 사정으로 체휼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애달픈 마음을 품고서 만민을 구속해야 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신 것과 같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악한 땅에 태어나 홀로 누우신 예수님의 말구유에 여러분이 친히 누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황태자, 하늘의 왕자인데도 불구하고 이 땅 위에 태어나실 때, 마굿간이 웬 말입니까? 서러움에 북받쳐 있는 예수의 서러움도 서러움이지만 그 예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내적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사실을 놓고 서러움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껴야 합니다. 또한 끝날에 처해 있는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사명을 내가 홀로 맡았다는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만민을 위하여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푸대접을 받으며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자리에 계셨던 예수님의 사정을 내 사정으로 바꾸어 생각해 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당신의 서러움을 위로해 줄 수 있는 합당한 존재가 있었다면, 그 한 사람을 붙들고 자기의 모든 소망을 풀어 놓고 싶을 정도의 사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4천년의 세월을 통하여 택해 놓은 이스라엘민족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준비되었던 유대교단이 예수님을 몰랐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베들레헴 성중의 말구유 위에 누워 있던 예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의 서러움을 다시 한번 거듭되게 한 것이었습니다. 어느누구 하나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를 편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이제 하나님의 원한과 이 땅 위에 왔다 가신 예수의 원한을 거두어서 다 풀어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사탄의 침범 조건을 내 몸에서 제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가 6천년의 역사를 대신하여 이 땅 위에 나타날 것을 안다 할진대는 부디 여러분은 이스라엘민족과 같은 입장에 서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예수 중심도 아니었고, 메시아 중심도 아니었고, 하나님 중심도 아니었고, 자기 중심한 것이었습니다. 메시아는 기필코 오실 것인데 그것을 알면서도 메시아를 모시기 위한 준비를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의 말구유 위에 누워 있는 예수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외쳤을 때 온 예루살렘 성중은 소동했습니다. 이방나라의 점쟁이들이 예수를 찾아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동은 기쁜 일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기쁜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