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심정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2권 PDF전문보기

十字架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心情

그러면, 그러한 이스라엘민족과 인류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슬픔은 어떠한 것이었는가? 그것은 당시의 보여지는 그 환경만을 보시고 슬퍼하신 서러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서러움은 아담의 타락 이후 4천년 동안 복귀섭리를 해 오신 하나님의 애달픈 심정을 대신한 서러움이었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4천년 기나긴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수고한 수많은 선지선열들의 서러움을 대신한 서러움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었던 것을 오늘날 우리들은 느끼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서러움은 어느 정도였던가?

4천년 하나님의 서러움과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선지선열들의 서러움을 대신 지니고 오신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서러움을 하나님과 천천만 성도와 천군천사들은 알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서러움은 당신을 위한 서러움이 아니었고, 당신을 죽이는 이스라엘민족을 위한 서러움이요, 유대교단을 염려한 서러움이었으며, 세계적인 뜻길을 염려한 서러움이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심정을 이해한 후 반성하고 회개해야 할 이스라엘민족과 유대교 지도자들이었지만, 그들 중 아무도 예수님의 서러움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한의 심정과 지상의 인간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품고 오신 예수님을 유대교단이 메시아로서 모셔드리지 못하였으니, 예수님의 슬픔은 한층 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야 할 이스라엘민족과 유대교단이 세워주신 하나님의 소망의 뜻을 망각하고 예수님을 배신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으니, 예수님은 30여평생 하나님의 눈물을 대신하여 한없는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는 생활을 거쳐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의욕에 찬 소망을 품고 아버지의 사정과 심정을 소개하는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수고하신 3년 공생애기간 동안 서러움이 북받침을 참으시며, 겟세마네동산을 거쳐 골고다의 산정까지 몰리며 쫓김을 당하시지 않을 수 없는 비참하고도 처참한 서러움을 겪으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겟세마네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간곡한 기도를 드리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하나님의 서러움과 천천만 성도들의 서러움과 만 인간의 서러움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하는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이요, 당신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 당신을 따르는 수많은 성도들도 죽음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서러운 심정이 북받쳐 하늘 앞에 그러한 호소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서러움과 인간의 서러움을 대신하고, 후대의 억조창생의 서러움을 대신하여 애달피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 여러분들은 그런 예수님을 역사적인 예수님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에서 또 다시 그때와 같은 사정에 처해 있을지 모르는 예수님의 모습을 찾아 이 세계에 드러낼 수 있는 예수님의 후계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 속에 맺혀져 온 예수님의 한과 서러움은 풀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늘을 믿는 성도들은 그러한 예수님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 온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예수님의 맺힌 서러움을 풀어드려야 되겠고, 후손들에게 이어질 서러움까지 풀어버려야 되겠습니다.

지금의 이 시대는 누구나 말하고 있고, 또 많은 선지자들이 예고했던 `끝날'이며, 예수님께서 민족과 교단으로부터 버림받아 돌아가신 후 다시 오실 것으로 말씀하셨던 `재림의 때' 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때를 맞아서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은 찾아오실 예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어야 되겠고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단과 유대민족보다도 더 간절하게 하늘 뜻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