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로 대접받지 못했던 예수님의 서러움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5권 PDF전문보기

메시아로 대접받지 못했던 예수님의 서러움

만일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했을 때에 가졌던 결심을 예수가 자라는 동안에도 가졌던들 예수의 십자가의 길은 막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모자가 협조해야 할 내적인 사정과 외적인 사정을 완결짓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가정을 버리고 제자를 찾아나섰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갈릴리 지방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서 마리아로부터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달라는 말을 듣고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4)"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예수가 마음에 품은 생각을 마리아가 몰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도 몰랐고 그의 사랑하는 형제도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는 그 마음으로는 하늘을 염려했고 그 몸으로는 생활 환경을 염려했고 그 몸으로는 생활 환경을 염려했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을 염려한 것은 당연한 일이로되 생활 환경을 염려한 것은 서러운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서럽게 났고 서럽게 자란 예수였습니다. 하나님만을 위하고 하나님만을 염려하면서 살아야 할 예수는 그 생활 환경을 잃어버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염려하고 몸으로는 생계를 염려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놓였던 이 슬픈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리하여 예수가 가정을 떠나게 된 것은 곧 형제를 떠나게 된 것이요, 4천년 동안 지나온 요셉의 종족을 떠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믿어주지 않는 모든 무리들을 바라보게 될 때의 예수의 심정은 어느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서글픈 심정이었음을 우리는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마음이 아픈 것은 그의 환경이 슬프고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와 형제들, 그리고 친척들이 자신을 몰라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한사실이 예수에게는 슬픔 중의 슬픔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본래의 마리아의 입장을 회복해야 되겠고, 요셉의 입장을 회복해야 되겠고, 예수의 형제의 입장을 회복해야 되겠고, 예수의 종족의 입장을 회복해야 되겠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의 입장까지 회복해야 되겠습니다. 이러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원한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예수가 탄생하여 이 땅에 왔다가 십자가를 지고 간30여년의 생애를 마음 깊이 느끼고, 예수께서 슬퍼했던 사실, 혹은 마음으로나 몸으로 고통당했던 그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태어나신 예수만을 축하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태어나셨다가 그렇게 슬프게 가신 예수를 알아야만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탄생하신 예수를 품고서 바라보고 있는 그 장면은 하늘 앞에 기쁨의 조건이 되었는지 몰라도, 예수의 전생애를 품어 주지 못하고 축하해 주지 못한 연고로, 하나님 앞에 기쁨의 조건을 세우지 못한 결과를 남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들은 나신 예수를 환영하는 반면 가신 예수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예수를 따라 십자가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나신 예수를 붙들고 축하드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러이러하게 가신 예수였으니, 이러이러하게 싸우신 예수였으니, 그 생애에서 느꼈던 모든 심정을 알고 그 심정을 계승해 가지고 대하지 않으면 왔다 가신 예수를 축하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 일신의 슬픔을 진정한 내 슬픔으로 여기고, 예수의 일생의 고통을 진정한 내 고통으로 여기며, 예수가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역사하신 전체의 뜻을 내 뜻으로 심중에 품고 바라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자랄 때의 예수의 심정과 자라서 고통을 받고 십자가에 돌아가시던 예수의 심정을 우리들이 알아야만 왔다 가신 예수를 축하할 수 있으며, 그 예수와 우리가 인연을 맺을 수 있고, 그 예수를 조건으로 하여 하나님과 우리와 인연이 맺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