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보다 더 중요한 실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7권 PDF전문보기

말씀보다 더 중요한 실체

예수님은 하늘의 아들로서 유언을 해야 했습니다. 사도들을 붙들고 하고 싶은 말을 못다 하고 간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도들이 예수의 친아들딸이 되었던들, 말씀을 못하실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가시면서도 유언을 하지 못한 예수였습니다. 마음에 사무친 비밀을 털어놓지 못하고 가신 예수였어요.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불효중에 이 이상 불효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이렇게 역사적으로 저끄러진 죄상을 벗기기 위하여 회개해야 됩니다. 만민은 부모를 죽인 죄를 지었기 때문에 다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는 무엇하는 것입니까? 아버지 죽인 죄를 뉘우치고 깨닫는 것입니다. 아무리 목석같은 자식이라도 진정한 선의 그 아버지를 내가 죽였다는 느낌이 들 때 눈물로써 회개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어떻게 알든 내가 알고 있는 그 하나님과 예수는 그렇다는 거예요.

본연의 가정이 그리워, 그 자녀와 그 형제와 그 식구가 그리워 6천년 동안 뜬눈으로 일을 하시면서도 피곤한 줄 모르고 걸어오신 하늘의 사정을 누가 알겠습니까. 예수님이 30여년의 생애 동안 어떠한 역경에 부딪쳐도, 외로운 겟세마네 기슭에서 밤을 세워 기도하면서도 그 심중에 생각한 것은 본연의 자식들이었습니다. 본연의 자식들.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면서도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눅23:34)''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자식을 찾으러 온 부모의 입장에 있는 몸이니, 이런 길도 응당 가야지' 하고 생각하셨던 예수였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의 심정을 가히 알 만합니다.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예수를 훌륭하다고 알고 하나님의 아들로 모십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불쌍하고 측은한 예수였습니다. 역적의 괴수요, 배반자의 괴수요, 이단자의 괴수로 취급된 예수였습니다. 역사에 알려진 예수는 훌륭하였으나 실제로는 측은하고 불쌍한 예수였던 것을 알아요? 우리는 역사상에 나타난 훌륭한 이름의 예수 말고 실체로 나타난 그 예수를 찾아나가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끝날 성도의 책임입니다.

불타는 부모의 심정으로 모든 사정을 넘고 모든 곡절을 넘어서 아들 딸을 찾기 위하여 허덕이던 예수였습니다. 부모의 심정으로 수고하신 예수님과 그 부모의 고생을 염려하고 그 모습을 찾기 위하여 허덕이는 아들딸이 상봉하는 날은 하나님이 입회하여 축복할 수 있는 날이예요.

이제 남아진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도 실체보다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말씀은 신랑이 신부 앞으로 보낸 편지입니다. 말씀의 주체되시는 실체가 나타날 때 편지라는 문서를 가지고 의논하겠습니까? 지금 때는 말씀을 중심삼은 행동을 완결지어야 할 때입니다. 사탄들을 정복하여 세계를 하나님의 품에 돌려드리는 행동을 해야 할 때예요. 그래야 실체가 나타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 딴 것이 없습니다. 예수 앞에 나가는 데 있어서는 내 아들딸이 방해되고 내 종족이 방해되고 딸린 것이 방해됩니다. 이리 걸리고 저리 걸리는 것들을 끊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혈족을 끊고 나가게 될 때에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복을 빌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이 땅 위에 육적인 혈족을 끊기 위한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싫다는 자는 예수 못 만납니다. 절대 못 만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