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사무쳐 우는 자리에 나타나시는 아버지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7권 PDF전문보기

그리움에 사무쳐 우는 자리에 나타나시는 아버지

상봉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느냐? 말씀을 잘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을 잘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워하는 자리, 오직 그리워하는 자리에서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으며 그의 손발은 어떻게 생겼을 것이뇨? 그의 눈과 코의 모습은 이러할 것이어늘, 그 모습을 만지고 싶고 그 모습을 더듬고 싶은 마음, 이것이 최후의 여러분에게 있어서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를 결정하는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말씀을 전해 주던 예수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관계 없어요. 만나는 데는 예수의 이름 불러서 되는 구원이 아니예요. 예수구원입니다, 예수구원. 실체적인 예수를 그리워해야 됩니다.

이렇게 보고 싶어 허덕여도 볼 수 없는 예수, 다시 오마 하신 그 예수는 왜 안 오시느뇨. 사도들 앞에 나타나마 하신 그 예수는 어찌하여 나타나지 않으시느뇨. 이게 무슨 곡절이뇨. 수많은 사도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당신을 보고 싶어하고 만나고 싶어하는데 못 나타나는 곡절이 무엇이뇨. 해가 가고 세월이 지나는 것을 개의치 않고 그의 모습이 그리워서 허덕이는 자가 있다 할진대 기필코 그를 상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고아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는 고아입니다. 땅 위에서 아무리 잘 사는 가정환경을 가졌다 할지라도 이를 하나님이 볼 때는 고아입니다. 우리는 참부모를 잃어버린 자요, 참형제를 잃어버린 자요, 참부부, 참자녀를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고아와 같은 우리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이니 편할 리가 있어요? 우리의 마음은 재촉합니다. 무엇을 재촉하느뇨. 내 본연의 부모, 본연의 형제, 본연의 처자를 찾으라고 재촉합니다. 그러나 이 지구상을 돌고 또 돌아도 이것을 찾을지 말지 하다는 것입니다. 말씀 가운데서도 찾을 수 없는 내용이니, 어디 가서 찾는단 말예요?

그러니 이제 해결점은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아버지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에 사무쳐 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찾아주고 주님이 찾아줄 수 있는 길이 있다 할진대, 어떠한 죽음의 길도 어떠한 험산준령도 개의치 않고 나는 가겠노라는 마음이 사무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아들딸을 찾기 위하여 겟세마네동산과 골고다의 길을 찾아가셨습니다. 찾으시다가 안 되니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본연의 부모를 상봉하는 한날을 고대하는 우리들, 그 모습을 붙들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그 모습을 붙들고 주라고 할 수 있는 그 한날이 그리워서 여러분은 몇 시간이나 울어 보았습니까?

이제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내가 낳은 아들딸보다도 다른 어떤 무엇보다도 그분이 그리워 못살겠고, 그분의 옷자락이라도 한번 만져보고 싶고, 그분의 손이라도 한번 만져 보고 싶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 아버지이시매 나와 인연이 맺어져 있는 그분을 만나 몸 마음을 다 드리고 그의 품에 안기어 지난날의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고, 괴로움과 수고로움을 위로받을 수 있는 그 한시간을 맞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 찾아나가는 최고의 소망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그리워하는 것보다도 행동을 그리워하는 것보다도 그 한 자체를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그 자체를 그리워하고 난 후에는 그 마음을 그리워해야 됩니다. 그 마음을 그리워해야 돼요.

옛날 유대교 신자들은 예수 그 자체는 붙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부모를 다시 만나기 위하여 그립고 또 그립고, 보고 또 보고 싶은 부모와 같이 그를 대한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인 예수를 이 땅 위에 만민의 아버지, 만왕의 왕으로서 보내실 때, 그렇게 천대받기 하기 위해서 보내셨겠어요? 역사 이래 하나의 중심존재로서, 만민의 아버지로서, 만백성이 그분을 봐도 봐도 또 보고 싶고, 그립고 그립고 또 그리운 존재로 맞아 주기를 고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슬픔이요 분한 일 중의 분한 일입니다. 자식을 위해 피 살을 뿌리며 찾아오셨으나 자식들이 총칼로 대했으니, 이 어이 하늘의 기쁨으로 남아지겠습니까? 하늘의 슬픔이 있다면, 예수의 죽음 이상 슬픈 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