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으라'는 말씀의 의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9권 PDF전문보기

'나를 믿으라'는 말씀의 의미

예수님이 '나를 믿으라' 하신 데에는 복잡하고 큰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세계를 걸어 놓고 우주를 걸어 놓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들 생명 천만개 이상의 가치로써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과거에는 나를 살려 주는 예수로 믿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예수를 믿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는 세계를 살려 주기 위한 분이요, 하늘 땅을 해방시키기 위한 분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그런 예수를 믿고, 그 예수의 제자가 되고, 그 예수의 백성이 되고, 그 예수의 아들딸이 되고, 그 예수의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는 찾아오셨습니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돌아가신 그날부터 예수의 이름을 세울 수 없는 환경에서 방황하다가 죽음을 당하는 사도와 성도들 개개인을 찾아오셨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개인을 찾아오시던 시대를 거치고, 가정을 찾아오시던 시대를 거치고, 사회를 찾아오시던 시대를 거치고, 교회를 찾아오시던 시대를 거쳐서, 이제 기독교사상을 위주한 하나의 국가를 찾아오시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전세계가 민주라는 이름을 걸고 기독정신, 기독교 이념권내에서 움직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앞으로는 예수께서 세계를 찾아오시는 시대, 세계적인 구주시대가 올 것입니다.

앞으로는, 자기 개인만의 구원을 받으려고 예수를 믿으면 예수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맞이할 수 없습니다. 맞이할 수 있는가 보세요. 예수가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을 통치하려 오시는 것입니다. 끝날에 오시는 예수는 천주적인 예수입니다. 끝날은 하늘과 땅 어디에서도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구하기 위하여 예수가 오시는 시대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잘 믿다가 죽어 낙원에 가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가서 '하나님, 이들은 땅 위에서 잘 믿어 낙원까지 온 아들딸이니 사랑해 주십시오'라고 못한다는 것입니다. 낙원권내에서는 자랑할지 몰라도 하늘보좌를 중심삼은 전체적인 천주이념권내에서는 자랑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오시는 예수의 시대에는 예수가 친히 하늘보좌에 가서, '아버지시여, 당신이 자랑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이오니 온 천주와 하늘 땅을 대해서 대승리자라고 축복해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가 소망하는 목표요,하나님이 소망하는 목표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목사가 되면 제일인 줄 알지만, 아닙니다. 목사이상의 국가적인 주님을 대할 줄 알아야 됩니다. 한 교회나 사회단체를 움직이려면 국가적인 예수의 심정을 체득해야 됩니다. 기독교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려면 세계적으로 찾아오시는 예수를 맞아야 됩니다. 그렇지 못하고 옛날 그 방식 그대로 하니 기독교는 깨져나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주님이 오신다면 그는 하늘과 땅을 주관할 수 있는 주인공인 동시에 하나님의 심정을 주관할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늘땅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정까지 주관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격자가 다시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는 그런 주인공으로 다시 오신다는 것을 똑똑히 아십시오. 그래야만 하나님이 마음 놓고 '그래 이 세상 모든 만사를 네가 맡아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안식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치가 그럴 게 아니예요? 땅 위에서 안식할 수 있는 기준을 종결짓지 못한다면, 역사의 최종적인 안식의 터전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와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어머어마한 말입니다. 여기 처음 온 사람은 거 이단자의 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좋습니다. 예수를 왜 해방시켜 드려야 되느냐? 예수는 낙원에서 아직도 기도하고 계시니 그 기도를 그치게 해드려야 됩니다. 하나님을 왜 해방시켜 드려야 되느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피땀을 흘리고 탄식하시는 하나님이 되었으니 해방시켜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들딸을 못 찾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들딸을 못 찾았기 때문에…….

무엇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천지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창조이념을 품고, 전체의 이상을 세워 놓고 아들딸을 축복해 주셨는데, 우리의 참다운 조상들을 중심삼고 안식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종결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에는 천륜의 축이 놓여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에 이러한 축이 놓여지는 날에는 세상은 혼돈하면 혼돈할수록 더 빨리 선의 목적지를 향하여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싸움이 벌어지고 복잡하여 뭐가 안 되는 것 같지만 여기에 세계가 동원됩니다. 두고 보십시오. 내부로는 깨지는 것 같지만 세계가 찾아들어옵니다. 더 단결된다는 거예요. 뜻이 있는 사람은 이때 생각을 잘 해야 됩니다.

천운이 어디로 흐르느냐? 천운이 흐르는 방향으로 움직이다 죽은 자는 충신이 되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천운이 흐르는 방향과 반대로 움직인자는 역적 안 된 자가 없습니다. 섭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충신은 공의(公義)와 전체를 위해서 죽는 자요, 역적은 자기를 위해서 죽는 자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우리는 전체를 위해 죽어야 됩니다.

사람은 귀한 것을 가졌으면 갖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기뻐해야 됩니다. 주신 분과 더불어 기뻐해야 됩니다. 그래야 주신 분도 기뻐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이 더 있으면 더 주고 싶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기뻐해야 됩니다. 이건 몇 억 원짜리를 주었는데 몇 십만 원짜리만큼만 기뻐한다면 그것을 빼앗아 갑니다. 귀한 것을 받았으면 그만큼 기뻐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마음이 넘쳐 흐르는 자는 행복한 자입니다.

이 기쁨은 순간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이런 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 그런 양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주고도 또 주고 싶은 것입니다. 자랑하고도 또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야! 참 좋구나, 야! 참 귀하구나' 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진정 귀하다는 것까지 잃으면서도 다 주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 그 귀한 것을 받게 될 때 이런 마음이 넘쳐흘러 '야,이제 고통도 문제없구나. 이 기쁨을 누가 빼앗아 갈소냐?' 하며 기뻐한다면 그 기쁨은 개인만의 기쁨이 아닙니다. 만민의 것입니다. 자랑하고 싶고, 주고 싶고, 받는 것을 볼 때 자기가 갖고 있을 때보다 더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이 넘쳐흐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원칙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인간은 귀한 것이 있으면 내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내것이니 누구도 노터치(no touch)다' 라고 하는 사람은 천륜의 배반자입니다. 천지의 운세는 그런 방향으로 나가는 자를 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