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메시아였던 예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0권 PDF전문보기

불쌍한 메시아였던 예수

하나님은 땅을 찾아 내려오고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 올라갑니다. 이것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하늘을 대신하고 인간을 대표하여 오신 분이 메시아입니다. 구주예요, 구주.

만일 역사노정에 그러한 분이 나오시지 않았다면 복귀역사는 아직 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때와 시기는 지나갔을망정 지금부터 2천년 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땅 위의 인간을 대표한 아들로서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그분의 가슴에는 평화의 세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마음에는 자유의 이념이 싹터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만인간의 사정을 전부 풀 수 있는 내용과 하나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인연적인 무엇을 가졌음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왔다 간 이후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유를 구가하는 기쁨의 노래 소리를 들어 보았어요? 예수님이 기뻐서 춤췄다는 말을 들어 보았어요? 예수님이 `하늘이여, 땅이여, 만물이여, 나와 더불어 기뻐하옵소서' 해보셨습니까? 옛날 다윗왕이나 솔로몬왕과 같은 분들은 영광의 자리에 서게 될 때 시를 읊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에게 시정(詩情)이 없었던 것도 아니요, 감정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분이 노래를 부른다면 슬픈 노래를 불러야 했고, 말을 한다면 슬픈 말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쌍한 메시아였습니까? 안 그래요?

복음 전파의 사명을 띠고 나선 걸음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상을 뒤집어 엎으신 예수님입니다. 좋아서 그랬겠어요?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믿었더라면, 그리하여 예수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자유의 이념을 개방시켰더라면 오늘날 이 땅이 이렇게는 안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최고의 이상주의자였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최고의 이념주의자였던 것입니다. 무슨 주의니 무슨 사상이니 하는 것을 다 합해도 예수님의 주의와 사상을 넘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분이 기뻐했더라면 그 주의와 사상을 통하는 자 전부가 기뻐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슬픈 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옷이 남루하였다니 웬 말입니까? 예수님께 이스라엘 민족의 어느 누가 먹는 음식보다 더 좋은 최고의 음식을 드렸던들, 4천년 동안 영광과 영화를 누리고 간 수많은 국왕들보다 더 한 영광을 누리게 했던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벌을 주시겠습니까?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이념을 갖고 오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심정과 사정을 갖고 오셨습니다. 인간의 사정과 인간의 심정과 인간의 이념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소원까지 갖고 오셨습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예수님은 오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우셨습니다. 홀로 외로운 자리를 찾아들어가 우셨습니다. 예수님이 외로울 때 찾아가신 곳은 고요한 산중이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더라면 그날부터 예수님은 하고 싶은 일을 하셨을 것입니다. 계획과 실천 방법까지 다 갖고 계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을 실천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여야 되겠습니다. 민족을 장중(掌中)에 넣고, 민족을 앞장세워 세계 개척을 위하여 새로운 행군을 해야 할 하늘이 보내신 메시아가 그렇게도 불쌍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은 죽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아니예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말하고, 하나님의 사정을 말하고, 민족의 운명을 말하고, 민족의 갈 길을 지도하러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민족 전부가 배척하였습니다.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전부 배척했던 것입니다. 이 고을에 가도 배척당했고, 저 마을에 가도 배척당했습니다. 만민을 위해 오신 구주의 모습이 이러했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옷을 입는 데도 여러분 이상 입지 못했고 먹는 데도 우리 이상 먹지 못했다는 거예요.

3년 공생애의 길을 나서는 예수님은 비장한 각오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영광의 길이 아닌 고난의 길이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무한한 영광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보내졌으나 영광과는 반대의 자리로 가야 할 것을 느낀 예수였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광의 심정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하려 하셨으나, 하나님의 자유와 하나님의 이념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하여 이스라엘을 하나님 품에 안겨 주려 하셨습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나섰으나 민족이 배척하니 반대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광의 길이 아닌 십자가의 길을 가야 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평지로 가야 할 예수님이 길도 없는 험한 태산준령을 넘어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4천년 동안 하나님이 닦아 놓은 길, 이스라엘이 닦아 놓은 길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내모니 예수님은 어디로 갔어요? 어디로 갔어요? 가면 몰리고 가면 쫓기니 죽음을 각오하고 겟세마네 동산을 넘어 갈보리 산정으로 가야 했던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유와 평화의 심정을 갖고 통치하여야 할 예수님이 몰리고 쫓기는 불쌍한 처지에 놓이게 되니 그런 이념을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