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고통과 한을 남겼던 예수의 생애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4권 PDF전문보기

슬픔과 고통과 한을 남겼던 예수의 생애

하나님의 뜻과 민족의 운명을 해결하기 위한 엄청난 뜻을 실현해야 하는 예수에게 있어서 제 1의 발판이 되어야 할 것이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정이 깨져 나가 버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는 할 수 없이 집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일이 의심되거든 기도해 보십시오. 명절이 되어 먹을 것이 있으면 그의 형제들은 자기들끼리 숨겨 놓고 예수를 따돌리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먹을 것을 그리워한 것이 아닙니다. 몰리던 예수는 그런 것보다도 명절을 맞이하여 부모의 품에 안기고 부모의 손을 잡고 그날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때, 그런 것이 말할 수 없이 그리웠다는 거예요.

크나큰 사명과 크나큰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역사 이래 처음으로 요셉 가정을 하나의 터전으로 삼아 이 터전 위에 하나님이 소원하는 가정을 세우고, 예수의 친족을 기반으로 하여 세례 요한을 포섭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것이 예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정이 떠나가고 부모가 떠나가고 형제가 떠나가고 친척이 떠나가니, 예수는 갈 곳이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2차적인 노정이 세례 요한을 찾아가는 노정이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가정을 잃어버리고 공생애 노정을 출발할 때 그는 누구보다도 슬픈 마음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가정에 대해 크나큰 천륜의 뜻을 두고 바랐는 데도 불구하고 그 가정을 버리고 나서야 했던 외로운 그 마음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이러한 어려움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에는 오직 승리의 날을 바라보면서 '그날이 오면 알리라' 하며 참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외적으로는 말할 수 없는 비장한 결의가 있었던 반면 그 마음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렇게 슬픈 마음을 품고 나선 예수를 향하여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며 그를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 일파는 모심의 도리와 충성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예수와 분립된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볼 때 외적인 가정, 즉 가인적인 가정의 입장에 있던 세례 요한을 찾아가는 예수님 앞에 그마저 예수님의 내적인 심정을, 품은 뜻을 알지 못하고 갈라서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툴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분한 사실이었는가를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자 예수님은 그의 가정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세례 요한으로부터 증거는 받았으되 그 앞에 마음을 주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을 중심삼고 외적 울타리를 만들어 가지고 전체를 수습하시려 했던 소망은 여지없이 깨져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예수는 유대교를 찾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유대교를 찾아간 것은 세례 요한의 실수까지도 수습하기 위해서 였는데, 그 유대교도 역시 예수를 배반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는 자기를 배척하는 유대교를 뒤에 두고 교단이 반대하던 민족을 찾아가셨던 것입니다. 만일 그 나라가 하나의 독립국, 하나의 주권 국가가 되어 있었더라면 군왕이나 그 나라의 주권자를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그 나라는 주권을 상실하고 로마의 속국이 되어있었고, 그렇다고 로마를 대적하여 나설 수도 없는 입장에 처해 있던 예수의 가슴에는 말할 수 없는 한이 서려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33년 생애 노정에서 슬픔과 고통과 한을 남겼지, 소망과 행복과 뜻을 남기지는 못하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예수는 민족에게도 마음을 주지 못했고, 교단에도 마음을 주지 못했으며,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 세례 요한에게도 마음을 주지 못했고, 그의 가정에도 마음을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처한 예수는 할 수 없이 이 고을에서 반대하면 저 고을로, 이 거리에서 반대하면 저 거리로, 유대인이 반대하면 이방민족에게로, 이 가정이 반대하면 저 가정으로 방랑하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탄식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갈래야 갈 곳이 없고 올래야 올 곳도 없는 예수였지만, 이루어야 할 책임과 사명을 짊어지고 내적으로 고뇌해야 했던 사실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