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소망·사랑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4권 PDF전문보기

믿음·소망·사랑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살고 있으되 자신만을 위해 살 것이 아니라, 승리적인 주관권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절대적인 신념을 갖고, 모심의 생활을 중심삼아 일체적인 입장에서 생활해 나가야만 승리적인 기대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조한 그들을, 창조이상을 이룬 자리, 즉 창조목적을 완성한 자리에서 주관해 보셨느냐? 그러지 못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천지는 아직까지 미완성입니다. 하나님의 소원 또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소망을 이루지 못했으니 뜻도 이루지 못했고,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인간 중심삼고 살아 보지도 못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소망을 이루지 못했고,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인간을 중심하고 살아보지 못하셨으니 이 천지에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정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인간들은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사정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무얼 찾아 나오고 있느냐? 역사 발전과 더불어 도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무엇을 찾아가느냐?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데는 먼저 무엇을 바라보고 찾아가느냐. 소망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찾아가야 됩니다. 그것을 연결 시키기 위해서 신앙이란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저 믿어라, 믿어라 하는 것은 막연합니다.

고린도전서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제일 먼저 하나님의 뜻을 소망으로 삼고 다음엔 그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생활의 실체, 즉 믿음의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창조 본연의 인간이 소망하는 기준이 원리주관권 내에서 완성 단계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라 할진대, 그 기준과 일치화한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을 찾기 위하여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간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다, 신랑 신부가 된다는 막연한 기대라도 좋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찌하여 인류의 구원섭리를 막연한 소망을 중심삼고 하느냐? 이 소망은 인간을 위주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그러한 뜻을 정확히 알기 전에는 이 소망이 명확해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배워서 알다시피, 원리결과주관권의 완성기준선까지 나아가 직접주관귄과 접선되는 그 경계선에서 모든 소망을 완결짓게 될 때, 그 기점은 하나님도 바라는 곳이요, 인간도 바라는 곳이요, 원리의 궁극에 도달한 곳이 됩니다. 이 3점이 일체가 될 때 진리와 인격과 사랑이 합하는 것입니다. 원리는 진리를 대신하고 인간(식구)은 인격을 대신하고 하나님은 사랑을 대신하여서 이 3점이 혼연일체화되는 그 자리가 말세에 나타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역사적인 기준으로나 복귀섭리의 기준으로 볼 때도 하나님은 승리적 주관자가 못 되었습니다. 왜 못 되었느냐? 아담이 승리적 주관자가 되어야만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창조목적이 하나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을 중심삼고 피조만물을 상대적인 이념으로 지었기 때문에 상대적 대상인 아담 해와가 결정(완성)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소망을 중심삼고 볼 때에 소망하는 승리적인 주관자가 나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