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바라시는 인간의 생활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4권 PDF전문보기

하나님이 바라시는 인간의 생활

이것이 6천년 긴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지금까지 구해 나온 참자녀인 것이다. 그와 같이 생각하면 현세에 있어서 주위를 볼 때에 하나님이 즐기실 환경은 아닌 것이다. 이 세계는 하나님이 바라고 계시는 세계가 아닌 것이다. 어차피 때가 오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거니와 지금은 참된 소원에 반발하고 정면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세계인 것이다.

이 세계에 하나님을 종(縱)으로 한 생활무대를 만들려고 한다면, 외적으로는 선한 하나님의 힘에 의한 용기를 가지고 선을 보호하기 위해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하나님 앞에서의 용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여기에 있어서 그 범위가 적으면 적을수록 외적 고통이나 외적 반발력은 반비례하여 증대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생활을 유지해 가는 데는 그 외적인 모든 조건을 버리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사람이 생활의 내용을 바로하고 환경세계를 심판할 수 있는 입장에 선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인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영원히 모실 수 있다는 입장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선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외적인 악조건과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면, 그 생활권내에 있어서 한 때는 하나님 자신에게 접할 수가 있지만, 생활권내 모든 것에 하나님이 관여하실 수는 없다. 하루의 생활권내에는 하나님이 접하실 수가 있지만 수십 년의 생애에는 관여하실 수가 없는 것이 하나님의 고민이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의 고민인 것이다. 생애에 하나님이 관여하실 수 있다고 하는 환경을 부를 수가 없어서 아직까지 악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이러한 관계를 초월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여기서부터 또 도망쳐 가서도 안 된다. 어떻게 하여도 우리들의 힘을 합하여서 이 관계를, 이 판도를 넓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당면한 책임인 것이다.

자기의 가정 혹은 씨족, 민족, 혹은 국민에 대해서 자유스럽지 못한 환경 가운데서 구원받는 판도에 서 있는 신자라는 것은 그 규모가 크면 클수록 거기에서 이중 삼중의 고통을 체험하고 또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참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충효의 길을 걷고 우리들의 후손에게 그것을 유업으로 남겨 준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그러한 괴로운 관계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