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부부와 예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4권 PDF전문보기

요셉 부부와 예수

예수는 태어날 때 마굿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30여 년 동안의 준비 기간을 거쳤습니다. 그런 후에 3년 공생애 노정을 지나면서 뜻하신 바를 세우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왔다 간 예수의 30여 년의 생애노정을 생각할 때, 그는 이 땅에서 메시아의 권한을 어느 한 날도 갖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서의 환경도 갖지 못했고, 가정도 갖지 못했으며, 친척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준비해 세운 그 시대의 선각자 세례 요한도 그를 환영하지 못했고, 그 시대의 예언자들도 그를 환영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전생애노정 중에서 어느 한 날, 민족 전체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그를 메시아로 대해준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개인을 대하지 못한 슬픔을 품고 갔을 것이요, 가정을 대하치 못한 슬픔을 품고 갔을 것이요, 혹은 종족, 민족, 국가를 대하지 못한 슬픔을 품고 갔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왔다 간 메시아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소망으로 이 땅을 찾아온 메시아보다도 소망을 품고 왔다가 슬픔을 품고 간 메시아의 생애를 알고, 그의 탄생을 축하하는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메시아가 탄생할 날을 축하하는 참다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하나의 가정에 보내셔야 하므로 요셉 가정을 택하셨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은 하나님이 품에 품으신 가정이었습니다. 천사가 처녀 마리아를 불러 동정녀로서 잉태할 것을 예고할 때 마리아는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재삼 권고하는 말을 듣고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던 마리아, 메시아의 영광을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이라도 치르겠다고 각오한 입장에서 메시아를 잉태할 수 있었던 동정녀 마리아, 이 마리아가 잉태한 것을 알게 된 그날부터 요셉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정혼한 처녀가 아기를 배었으니 요셉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이것은 그때의 사회 환경으로 보나 모세의 율법으로 보나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고민하던 요셉에게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고 분부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요셉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잉태한 마리아를 데려오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없는 출발을 한 마리아와 요셉은 세상에 둘도 없는 아기를 길러내야 했습니다. 그것이 요셉 가정의 책임이었지요. 민족이 예수를 메시아로 모시지 못하니 요셉은 민족을 대신하여 자기의 의붓아들과 같은 예수를 메시아로 모셔야 했습니다. 그래야 할 책임이 요셉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에게도 역시 이 땅에 신랑의 이름으로 오신 메시아를 대하여, 만우주의 여성을 대신하여 최고의 신부의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예수를 어릴 적부터 메시아로 모셔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메시아를 그 가정에 보내신 본래의 목적이었는데, 요셉과 마리아는 그런 사명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가정적인 기준에 있어서도 어떤 가정보다 귀한 가정에 보내진 예수, 이스라엘의 어떤 고귀한 사람보다 더 귀한 존재로, 하늘땅을 주고도 바꿀수 없는 귀한 존재로 온 구세주 예수를 마리아와 요셉이 진정으로 알고 받들었던들, 예수의 생애는 슬픈 생애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단정합니다. 오늘날 천주교에서 성모 마리아를 숭앙하지만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로서의 사명을 다했더라면 예수는 그렇게 불쌍하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이 천륜의 뜻을 신봉해 나가기 위해서 정성들이는 마리아의 생활을 본받아서 예수를 중심삼고 생활했던들, 예수를 목수인 자신의 조수로 생활하게 하지 않았던들, 예수가 그렇게 불쌍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말입니다.

요셉은 예수가 자신의 아들의 입장에 있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평면적인 세상적 기준에서 볼 때 예수와 요셉은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였지만 뜻적인 입장에서는 상하관계였던 것입니다. 벌써 출발부터 다르고 내용이 달랐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요셉은 예수가 메시아임을 안 그 시간부터 누구보다 충성되게 예수를 모시는 제사장의 사명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의 아들딸, 즉 예수의 동생들은 아버지인 그 요셉을 따라 형님이고 오빠인 예수의 말에 누구보다 절대 순종해야 했습니다.

예수의 말씀은 유대 민족 전체가 받들어야 할 말씀이요, 모세의 오경을 중심삼은 교리나 모든 법도를 전부 무시하더라도 순종해야 될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랬던들 예수는 슬픈 가정 생활을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환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 가정이 예수를 가정적으로 환영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개인적으로 환영받을 수 있는 입장도 찾지 못하고, 가정적으로 환영받을 수 있는 입장도 찾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올 때 요셉 가정을 통해 왔지요? 요셉은 다윗의 후손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택한 귀한 혈족으로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해 충성의 도리를 세운 선조들의 혈통적인 인연을 갖춘 후손이지요. 이런 요셉은 다윗보다 중요하고 솔로몬보다 중요하고 역대 어느 선조보다도 중요한 메시아를 만난 그날부터는 과거의 잘못된 전체를 버리고 메시아를 위주로 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만일 요셉이 그런 생활을 했더라면 베드로가 필요없는 것입니다. 요셉이 가정적인 환경에서 안식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던들, 예수가 외부로 나갈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무식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예수의 제자가 될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랑하는 동생들이 예수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