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팻말이 되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6권 PDF전문보기

말씀의 팻말이 되라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그런 목적을 중심삼고 해야 할 일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누가 아무리 반대하고 핍박하더라도 '때릴 테면 때려라. 채찍이 부족할 때까지 때려라 그러나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 하며 나가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역사적인 모든 죄악의 고빗길, 더 나아가 골고다의 산정까지도 쳐부수고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사상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철두철미한 사상과 진리에 입각하여 그 진리를 대신하는 인격적인 대변자로서 선악을 판가리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은 참사람, 참자녀, 참가정, 참사랑을 창건해야 할 엄숙한 사명을 자각하고 책임을 지면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몰리고 쫓기더라도 확고한 철칙을 세워야 합니다. 선생님이 영어의 몸이 되어 쇠사슬에 얽매어 있으면 안 됩니다. 설사 얽매어있더라도 언젠가는 자동적으로 끊어질 날이 올 것입니다. 이 시대가 알지 못하면 미래에 할 날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러한 자세와 신념을 가지고 사탄의 계교와 소원, 또 목적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3대 시험을 받을 때 '사탄아 물러가라, 천하의 모든 영광을 갖다 준다고 하더라도 내가 소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까짓 것에 안식의 꿈을 꾸겠느냐' 하며 고난 가운데서도 그 이상을 지켜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한 늠름한 여력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3대 시험에서 승리하였던 것이요, 십자가의 산정에서 승리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어려운 핍박의 화살이 빗발치고, 아무리 포악한 로마병정의 마수가 자기의 생명을 옭아맨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안 되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한 때 지나가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그것을 밟고 넘어 설 수 있는 신념이 있었기에 세계의 운세를 탕감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그 소망의 일념이 남아져 있기에 다시 오시는 예수님이 창건해야 할 문화세계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소원하던 문화의 세계, 즉 복지는 어떤 세계일 것인가? 그 세계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세계는 오늘날까지 우리를 대신해서 어떠한 개인이나 교회, 주의나 교단, 나라 등을 불러 왔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를 때에도 복지는 옆을 따라보면서 불러야 했고, 이스라엘 민족을 대할 때에도 팔을 벌려 쌍수를 들고 '오냐, 반기고 싶었던 민족아! 하면서 정면에서 환영하지 못하고 옆으로 바라보며 맞아야 했습니다. 그 각도가 크면 클수록 환영하기가 더 어려웠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요즈음 우리 통일교회의 식구들을 가만히 보면 현실적인 환경에 자기의 터전을 닦아서 거기에 안식하려는 모습들을 보게 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기는 혼자만의 자리가 아닙니다. 이 자리는 아브라함도, 이스라엘 민족도, 예수님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비록 비참하나 한민족으로 태어난 우리가 이 삼천리 반도를 기반으로 하여 터전을 닦게 된다면 결코 미국이나 소련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옛날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참다운 진리의 말씀을 다시 찾은, 만세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리와 이념을 찾은 입장입니다.

우리는 이제 구경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이념을 대신하여 말씀을 지키고 재무장하여 말씀의 팻말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완결된 하나의 장벽을 넘어가는 데 있어서 부딪치는 장벽을 모두 파괴시키고 만다는 신념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뜻적인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광야에서의 생활이 곤고하고 어렵게 되자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시 애급 땅을 그리워 했습니다. 꿈에서도 생각해서는 안 될 그 애급 땅을 그리워했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올무에 걸린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을 넘어서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