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는 사람이 서야 할 자리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0권 PDF전문보기

위로하는 사람이 서야 할 자리

예수님이 십자가를 향하여 나가던 그 이상의 심각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인연을 갖지 않으면 예수님과 같이 낙원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목숨을 걸고 십자가를 지면서도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하여 비로소 낙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건달 중에 상건달이요, 일주일마다 믿으면 된다 하여 그저 속여 먹고, 좋으면 훑어 먹고 걸러 먹던 패들이 `예수님 믿은 덕택으로 아이고, 하나님 아들딸이니 나도 가야지' 하며 성큼성큼 나서 보십시오. 다리가 움직여지나. 체면이 있어야지요. 사람이 체면이 있어야 할 게 아니예요?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남자가 나와야 하고 여자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위로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분을 필히 만나야 합니다. 아들이 죽어서 낙망한 사람에게 `우리 아들이 셋인데 아들 하나를 당신의 아들로 삼으시오' 한다고 해서 위로가 돼요. 위로가 됩니까? 그러나 세 아들을 잃어버린 사람이 눈물을 듬뿍 흘리며 `당신의 사정을 내가 잘 알아요'라고 할 때는 눈물 한방울이라도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시퍼렇게 아들을 세 명이나 두고서 `참 안 됐어요. 대신 우리 아들을 줄께요' 하면 아무리 그래 봤자 위로가 될 것같아요? 천만에, 위로하려면 그 사람 이상으로 서러운 심정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시는 주님은 어떠한 사림이어야 되느냐? 하나님이 사랑으로 창조해 놓은 인간이 타락하는 것을 바라보실 때 서러웠던 그 심정을 체휼하고 통곡할 수 있는 사나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위로의 대상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러한 사연을 품고 십자가를 짊어지고도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또 그런 예수님의 심정을 알았기 때문에 기도하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같이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믿고 있는 기준이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기준입니까? 하나님은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말로서만이 아니고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고 있는 마음과 몸의 사정을 두고 볼 때, 과연 하나님이 찾고 있는 아들이요 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위로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위로할 것인가? 여러분이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입고 싶은 것 다 입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남은 찌꺼기로 위로해요? 천만에. 그것은 사탄도 싫어하는 것입니다. 불과 너댓살밖에 안 되는 유치원 학생들 앞에 빵쪼가리를 갖다 놓고 너 어디를 가질래 하며 귀퉁이는 흙이 묻었다고 안 가지려고 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자식들도 그러하거늘, 천지를 창조한 본연의 주인인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족한 자신이요, 가면 갈수록 천년 사연을 내 마음 속에서 용서할 수 있는 빛된 나를 지지러지게 한 이 환경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몸부림치기에도 부족한 자신인 것을 생각할 때, 이 꼴을 가지고 뭐 가지 사정 몰라 준다고 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