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를 자랑하고 있는 선화어린이무용단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2권 PDF전문보기

한국의 문화를 자랑하고 있는 선화어린이무용단

이제는 20세기 후반기의 문화를 건설하겠다는 선진국가들이 통일사상을 문제시할 수 있는 권내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세계 인류 앞에 한국의 문화를 자랑할 수 있는 한 날을 맞기 위해서 우리는 선화어린이무용단을 창설했습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수천만 원의 자금을 빚을 내서 이 일을 해 나왔지만 우리 통일교인들조차도 마음으로부터 동정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선생님이 옳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일을 하는 우리의 투쟁이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그 투쟁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실력이 있고, 하나님께서 동조할 수 있는 인연이 있다면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십 년 동안을 훈련한 연예단체들도 미국의 문화세계에 들어가 공연을 했을 때 그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망해 쓰러져 갔지만 어린 꼬마들을 모아 놓고 3년의 짧은 기간 동안 훈련시킨 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미국에 가서 첫공연을 했을 때부터 대환영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기적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꼬마들이 공연하기 전에 한데 모여 눈물 흘리면서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번에 공연하게 되는 이 꼬마들의 모습이 꼬마들의 모습만으로 보이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하늘 백성으로서의 천명을 받들고 있는 하나님의 사자이니 미국의 문화를 제압할 수 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을 그리워했기 때문에 그들은 이러한 엄숙한 사명을 짊어지고 천명을 수행하기 위해 나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꼬마들이 서로서로 하는 말이 이상하게도 기도를 하고 무대에 나가면 춤도 잘 추어지고 실수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난다 긴다 하더라도, 아무리 모양이 우리보다 크고 내용이 풍부하다 하더라도 우리 앞에는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한미문화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1960년대를 넘어서게 되면 백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권내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일본의 협회장한테, 세계적으로 명망이 높아진 우리 선화어린이무용단이 일본 공연을 해야 되겠다고 명령했습니다. 아세아에 있어서 한 때에 찬란한 문화를 자랑했던 한민족이 밟히고 시궁창에 버려져서 쓰러진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다시 꽃필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을 위해, 아세아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일본 천지를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일본 공연을 추진했습니다. 일본 공연도 시간이 많지 않아서 3개월 전에야 준비했습니다. 일년 전부터 준비해야 할 것을 3개월 전에 준비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대한민국 정부도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일본 식구들은 선생님이 명령하여 그 나라를 위해서 죽으라 하면 죽을 정도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동원하여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일의 책임자인 구보끼(久保木修己)협회장은 공연하기 전에 선생님을 찾아와서 공연 장소를 다시 정하고 공연하는 기간을 단축시키면 어떻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싸워 보지도 않고 후퇴하는 것은 약자 중의 약자라는 말을 하면서 일본 공연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비싸게 하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건너간 예술단체들은 전부 다 거짓 노릇을 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절대 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일본 사람의 조직을 통해서 일본 사람의 돈을 이용하여 한국의 민족 문화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일본 민족 앞에 탄압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1967년도에 일본에 갔을 때 큰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자기 나라에 온다 하니까 신문 기자들이 나한테 회견을 신청했습니다. 고관이나 국가 수뇌들도 만나자고 하면 선뜻 응해 주니까 나도 만나 주겠지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천만에, 그들은 선생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들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문전에서 쫓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분하게 됐거든요? 그래서 있는 말 없는 말 해 가지고 통일교회를 놓고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할 테면 하라 이것입니다. 그러는 너희들은 얼마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선전상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한 40일 동안에 일본 역사상 전례에 없는 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1967년도의 일본 언론계에 화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통일교회에 대한 내용이 톱기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한 40일 기간에 5억 8천여만 원의 선전비를 들여 선전한 정도의 효과를 얻었습니다. 약 280여 개의 언론기관이 동원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문선명 선생하게 되면 홋가이도(北海島)끝에서부터 가고시마에 이르기까지 소학생 이상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차 안에서든 어디서든 전국의 마을마을 골목골목에 이르기까지 전부다 선생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젊은 청년들은 부모가 반대하는 것을 뿌리치고 대학도 그만두고 집을 뛰쳐 나와서 밥을 얻어 먹어가면서까지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새로운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무슨 장관 아들 할 것 없이 자기의 모든 간판을 다 버리고 나서니까 그들의 동생들도 덩달아 모든 것을 집어 던지고 형을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혀도 문제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