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바쳐 충성하는 사람이 충신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5권 PDF전문보기

생명을 바쳐 충성하는 사람이 충신

하나님께서 복귀전선의 최일선에 누구를 믿고 내보내시겠느냐 죽을 일이 있으면 먼저 죽겠다고 덤비는 낯선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이 참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선조의 공적이 있는 사람을 중심삼아 보내고 싶은데 난데없이 아무 공적도 없는, 세상적으로 보면 백정과 같은 상것이 자식이 나타나 가지고 하늘을 위하여 죽는 길의 선두에 서겠다고 하니 이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하나님은 응당 그런 사람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도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피할 때는 역적의 자식이라도 그럴 수 있다면 써야 되는 것입니다. 비상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그런 배포를 가진 사라면 역적의 자식이라도 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박한 입장에서 누구를 믿겠습니까? 역적의 자식이라도 죽음길의 선두에 서겠다는데 `너의 아버지가 역적이니까 넌 안 돼' 할 수 있겠습니까? 역적 집안, 역적의 아들 중에서도 충신이 나오는 거예요.

이러한 것은 국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에 죄를 져서 사형언도를 받은 사형수라도 적진에 들어가서 공훈을 세우고 돌아오게 되면 살려 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생명을 걸고 나서는 데 있어서 충신과 역적은 일시에 뒤넘이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복귀섭리의 원칙이 그러니까 할 수 없는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협회장 이상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협회장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협회장이 죽든가 병석에 눕는 불상사가 벌어질 경우 벌써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왜 하느냐? 앞으로 복귀전선에 나갈 믿음의 용사가 나타나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슨 간판을 들고 나서야 되느냐? 일병이면 일병, 병장이면 병장등 무엇이든 붙이고 나서야 될 게 아닙니까? 그러면 무엇을 붙이고 결전에 임할 것이냐? 생명의 용사라는 간판을 붙이고 임해야 합니다. 생명의 용사는 무엇으로 결정되느냐? 생명의 용사는 그 행동의 목적이 사선을 넘어 적진을 격파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용사에게는 그럴 수 있는 선민적인 터전이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우리 통일교회를 반대해 왔는데, 우리는 여기서 경쟁을 해야 합니다. 포탄도 쏘지 않고, 총칼도 쓰지 않고 경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기성교회가 지금 아랫도리를 가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몰려들 것입니다. 내가 걸어 낚아채면 순식간에 몰려올 것입니다. 이제 한순간의 작전 계획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그것을 위하여 전진하고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대열에 있어서 참된 용사가 되어야 하겠으니 무관심해서는 안됩니다.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라가 비상사태에 임했을 때,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는 그 전선이 전체 국민의 애국사상과 얼마만큼 깊이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심이 크면 클수록 그 국민의 승리는 가까와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