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길을 가게 하는 이유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6권 PDF전문보기

험한 길을 가게 하는 이유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에는 험한 고개가 숱하게 많았습니다. 그 숱한 길, 험한 길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통일교회 자체를 청사에 빛낼 수 있는 가치를 지니게 해주고 승리적 조건을 세우게 하는 하나의 요건이 되었으면 되었지, 파탄시키는 요건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이 험한 고개를 어떻게 극복해서 넘었느냐에 따라 승리의 발전을 얼마나 잘 닦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그런 험한 길을 가게 하는 것은 인류를 희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에 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옛날 아브라함이나 다윗은 이런 것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야곱도 그런 것을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대에 사는 우리는 이러한 것을 완전히 알고 이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내일에 당할 시련과 고통을 이 기준에 맞추어 결정짓지 않고는 내 생애의 최후의 결판을 지어야 할 때 아무조건도 제시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심각하겠습니까? 어느누구도 대할 수 없는 비판 받는 자리에서 그것을 양팔로 붙들어 책임지고 정면에서 부딪쳐야 합니다. 그래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자리에서 우리 인생으로서 천적인 권위를 결정지을 수 있는 엄청난 조건이 이때에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험한 길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좋은 겁니다」 한창 꽃다운 청춘시절에 자기의 둘도 없는 신랑과 신혼살림을 해야 할 여성이었는데, 통일교회를 믿고 이런 길을 걸어 나오다 보니 누더기옷만 입게 되고 나이만 먹게 되어 이제 주위를 돌아보니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이가 50이 넘어서 `그냥 살았으면 세상의 아들딸이라도 낳고 살았을 텐데 이게 뭐야. 안착할 곳도 없이 쓸쓸하기 짝이 없고 적막강산이다. 통일교회 괜히 믿었다' 라고 후회를 합니다. 여자들, 이것이 잘된 거예요, 못된 거예요? 잘되었으면 감사해야지, 불평하면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잘될 수 있는 자리에서 못되었으니 그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을 위해 몽땅 바친 그것을 후회하지 말아야 합니다. 꽃다운 청춘시절을 배신자를 위해 바쳤으면 다시 빼앗아 와야 합니다. 배신자는 상대방으로부터 마구 밟히고 밟혀 죽게 되었을 때에야 후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나 믿지 못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식을 키우는데 여러분이 인재될 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라도 됩니까? 흠 투성이요, 형편없는 무리들이 자신들을 받아 달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할 수 없이 눈을 감고 왼손으로 붙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될 수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이키게 하려고 끌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얼마만큼 따라 나오다가 `아이고! 싫소 싫소. 살려 주시오. 다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 왔으면 반대로 그 만큼 더 가야만 되는데 여러분은 그러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왔던 걸음이 수고한 공적에 반대되는 형벌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래요, 안 그래요? 효자의 한마디의 불효한 말은 부모의 가슴에 칼을 꽂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믿었던 만큼, 가깝던 만큼, 절대시했던 만큼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여러분은 어디로 가고 있느냐? 돌아갈 수도 있는 자유의 길,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자유의 길, 옆으로 비켜갈 수 있는 자유의 길, 나그네처럼 가다가 쉴 수 있는 자유의 길, 그런 길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못난 사람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모두다 못난 사람이 아니겠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길을 가다가 점점 깊은 골짜기가 나오게 되면 절벽강산이라고 가던 길을 포기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를 가거나 아무리 길이 있어 간다고 해도 전부다 염려하기 때문에 끝까지 가지 못합니다. 길을 가는 데는 가다 보면 절벽강산도 있고 큰 수렁도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