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9권 PDF전문보기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만물을 대함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일 것인가? 사회면 사회,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일 것인가? 막연하게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걸어오신 길을 더듬어 가는 것이 제일 빠른 길입니다. 만일 사람이라는 존재가 이 땅에 없다면, 생각을 가진 `자기' 라는 존재가 땅 위에 없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기 위해 생각하시던 그 입장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생각을 체계화하고 이론화해서 그것을 중심삼고 바라시던 형태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사람에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타락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복귀시키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무엇을 실천하는 것 보다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인간은 어떤 존재냐' 하는 문제를 해명하지 못한 채 역사는 흘러 나왔습니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도대체 나 자신이 어떤 존재나 하는 문제를 해명해야 됩니다. 그것을 해명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서 본래의 인간 모습을 재현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단계를 찾아 올라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들이 추구하고 있는 이상세계, 유토피아적인 이상세계를 이루는 것보다도 인간이 어떤 존재냐 하는 것을 해명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나 자신'이 어떠한 존재나 하는 것을 해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명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말씀으로 표현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명하는 것이 지금까지 철학이나 종교가 추구해 온 최고의 목적입니다. 인간의 존재를 해명하여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는 말씀의 형태를 어떻게 갖추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의 생각에서부터 말씀의 형태를 갖추어 실체화된 인연을 잃어버린 입장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다시 말씀을 찾아 들어가야 됩니다. 찾아 들어가는 데는 어디까지 찾아 들어가야 되느냐? 하나님의 생각의 바탕까지 찾아 들어가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던 관념권까지 찾아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던 것이 이것이었구나' 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권까지 찾아 들어가서 하나님의 생각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실체를 쓰고 다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타락한 실체를 쓴 입장에서 이상적인 세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피조만물을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으니, 그 말씀의 내용을 자신에게 재현시켜 가지고 내 자신 속에서 모든 실체세계와 관계맺을 수 있는 말씀의 형태와 체계를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말씀의 체계를 찾는 데서 끝날 것이냐? 아닙니다. 한 단계 더 들어가 말씀이 출발한 하나님의 생각, 즉 하나님의 관념권까지 찾아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참선을 하는 것도 마음의 근본을 찾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존재의식을 부정하고 무(無)의 상태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무의 상태, 즉 인간으로 태어난 자체의 존재 의식을 완전히 상실한 권에 들어서게 되면, 다시 말해 의식의 경계선을 넘게 되면 거기서부터는 하나님의 생각권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도달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내가 아닌 새로운 관념이 소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새로이 소생한 나의 관념은 지금의 생각보다도 더 좋다는 기준일 것입니다. 이런 것을 추구하면서 참선을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뭐냐? 이러한 내용들을 알았다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바탕, 즉 생각의 바탕에 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모든 것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적으로 뻗어 나가는 것보다도 정신을 통일해서 내적으로 깊이 추구해 들어가는 길을 모색해야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기도생활이 아니겠어요? 여러분이 목적을 세워 놓고 그것을 성사시키려는 기도보다도 하나님의 생각에 접해서 하나님께서 하고 싶어하시는 말씀을 체휼하여 그것을 실천하겠다는 기도가 더 귀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하기 위해서 조용한 곳을 찾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