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탕감 역사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2권 PDF전문보기

피할 수 없는 탕감 역사

어떤 영통인들은 협회장님은 갈 곳이 이미 영계에 기록되어 있는데 사자가 오지를 못해서 떠나지 못한다는 말도 했어요. 여러분이 잘 알지 못하겠지만 선생님은 이번 사건으로 말미암아 식구 외의 사람들도 많이 염려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듣고자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들이 전화나 여러 가지 연락을 통해서 선생님이 섭섭할까봐 보고를 하며 위로하는 것을 볼 때에, 선생님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공적인 일로서나 뜻적인 일로서 도와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뜻이 가는 길은 개인의 바람에 보조를 맞출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한입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이 바라는 기준에 보조를 맞춰 갈 수 있는 그런 때가 아직까지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때를 향하여 가는 우리들의 앞 길에는 수많은 골짜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골짜기를 무엇으로 메워야 할 것이냐? 죽음의 때가 되면 될수록 하나님은 그 골짜기를 악한 것으로 메우기 보다는, 선한 것으로 메우고자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골짜기와 정상은 반드시 선한 것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정상의 자리는 선하게 생각하여 하늘 것으로 여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골짜기도 선한 것으로 채워 하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작년과 금년에 벌어진 일들은 안팎으로 크나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선생님이 벌써부터 염려하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유협회장이 1차, 2차, 3차까지 수술을 받게 될 때에 영적으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를 위해 기도하라는 명령은 했지만 선생님은 이미 최후의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를 위해 정성드리는 기간에 선생님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하여 정성을 들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며칠 후에 그가 가게 된 거예요.

유협회장은 음력으로 따져서 희진 애기가 간 날짜보다 3일 뒤에(음력 1970년 6월 21일) 갔습니다. 이렇게 볼 때, 둘째가 언제나 문제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선생님 가정의 둘째인 희진이도 갔습니다. (음력 1969년 6월 19일 별세) 이처럼 탕감역사라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통일교회의 원리는 막연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탕감의 역사노정에서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나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유협회장의 가정도 뜻적으로 보면 둘째 가정입니다. 그러한 입장이기에 선생님이 그에게 전체의 책임을 지워 놓았던 것입니다. 그가 불구의 몸이었기에 지금까지 지탱해 나왔지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70년대는 선생님이 이미 말한 거와 같이 통일교회가 자리잡을 수 있는 시대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금년부터의 3년간이 아주 중요한 기간입니다. 특히 금년은 아주 중요해요.

금년에 들어와서 그런 움직임이 네 번 이상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식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작년에도 여러 사람이 갔습니다. 금년에도 여러 사람이 갈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때일수록 정성을 더 들여야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사적인 문제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공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가슴에 맺히는 슬픈 일을 당하더라도 그 아픔을 초월해야지 눈물을 흘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오직 뜻을 중심삼고 흘리고, 섭섭하게 생각되더라도 뜻을 중심삼고 섭섭하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