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맺힌 것은 땅에서 풀어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2권 PDF전문보기

땅에서 맺힌 것은 땅에서 풀어야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오는 데에는 여러분이 상상도 못 할 어려운 고빗길이 많았습니다. 어려움이 닥치는 그 순간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탕감의 때이니만큼 아주 심각한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심각해야지 자기를 중심삼고 심각해지면 하나님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플러스와 플러스가 부딪히면 반발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럴 때에는 침묵과 정숙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정을 넘어서부터 고요한 시간, 세 시면 세 시까지의 기간을 넘어가는 기간에 자기를 중심삼고 요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피동적인 입장에 서지 말고 화동적인 입장에 서서 하나님 앞에 정숙한 마음으로 침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완전함 무의 세계에서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입장에 서서 하나님의 뜻에 보조를 맞춤으로 흡수될 수 있게끔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런 후에라야 은사의 때가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은사의 때라고 해서 함부로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일상생활에서 이런 것을 잘 가릴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은사의 때라고 해도 자칫 잘못하면 그 은사가 오히려 치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넘어야 될 탕감의 노정에서 그러한 일로 동요될 때가 많은데,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것을 공적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작년에 희진이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여러분은 선생님이 섭섭함을 금치 못하리라 생각했겠지만 선생님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뜻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엮어 온 역사노정에 어린 슬픔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가 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던 것입니다.

요셉 가정을 생각하면서 우리 가정은 요셉 가정보다는 복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희진이가 간 것도 예수보다 복된 자리에서 가지 않았느냐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고방식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설사 그것이 틀린 생각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이 동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일이든지 자기를 중심삼고 연결시키지 말고,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연결시키라는 것입니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한 것을 소생시키기 위해서는 그 나라를 위해서 나가는 종교 단체면 종교 단체가 제물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해요. 그 나라를 위해서 정성들인 단체가 제물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세계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개인이나 단체가 있다면 반드시 그 개인이나 단체가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제물은 반드시 귀한 것을 드려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이번 일이 인정적으로 보면 슬픈 일인지 모르지만,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커다란 봉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기도하는 것은 유협회장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잘못한 것, 내가 알기에도 몇 가지 잘못한 것이 있는데 그러한 것을 내가 어떻게 청산지어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서 동정하기 보다는 어떻게 그의 잘못을 청산지어 주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 땅에서 맺혀진 모든 원한을 죽기 전에 풀지 않으면 저 나라에서 그 원한이 영원히 맺혀 있다고 말하잖아요?

그러니 그가 뜻길에서 풀지 못하고 맺혀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서 그것을 풀어 주어야 하는 것이 협회의 책임인 것입니다. 각자 자기가 무슨 일을 중심삼고 유효원 협회장과 맺혀 있는 것이 있으면 이번 기간 내에 모두 풀어야 합니다. 공직에서 책임을 진 사람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정책적인 내용에 있어서든 대외 활동에 있어서든 그와 다른 입장에서 섭섭한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으니 그런 것을 다 풀라는 것입니다.그것을 계속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그를 위해 기도하고 정성들인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관계를 맺을 수 없었던 과거지사를 청산지어야 하는 것이 우리 협회가 지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보는 입장과 뜻이 보는 입장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이것이 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는 입장과 뜻이 보는 입장을 반드시 일치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엇갈려 벌어지는 탕감노정을 거쳐가야 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당할 적마다 침묵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숙해야 된다든 거예요. 그러면 망하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뜻은 제대로 모르면서 무엇이 어떻고 어떻다고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러는 것입니까? 영적인 안팎의 내용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확실히 알기 전에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문제를 대할 적에는 엄숙해야 합니다. 누구든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함부로 하다가는 탕감법에 적용되어 걸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공식이 그렇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