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가인 아벨의 원칙에 일치되었는가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4권 PDF전문보기

여러분은 가인 아벨의 원칙에 일치되었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원칙에 어긋났기 때문에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칙에 어떻게 어긋났느냐? 아벨은 가인을 사랑해야 했는데,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고 도리어 가인의 분노를 폭발시킨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러니 화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함부로 떠들다가는 맞는 것입니다.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에도 누가 그렇게 떠들었느냐 하면 제자들이 떠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하려고 했는 데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하라는 짓은 안 하고 하지 말라는 짓만 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하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은 눈에 보이거든,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은 말해도 모르니까 보이는 것만 들고 다니며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뭐 유대교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떠들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면서 충동질해 가지고 다 망쳐 놓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사렛으로 피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됐었습니까? 아닙니다. 제자들이 다 망쳐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로마는 유대나라를 점령하고 있는 원수 나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원수 나라의 총독인 빌라도 앞에 서서 화난 얼굴이 아니고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너희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해라. 나는 탕감조건에 걸리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하늘 뜻에 절대 순종하고, 너희를 사랑하고, 너희들을 위해 죽을 수 있다. 천리의 원칙 기반이 여기에서 벌어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묵묵히 그 환경을 다 받아 넘겼던 것입니다.

'원한의 역사시대에 가인이 아벨을 치던 그 모든 시련을 내가 해원하겠다. 역사시대에 가인들이 제시했던 그 모든 것을 재판(再版)해라. 그렇더라도 나는 그 모든 것을 수습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 갈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묵묵히 그 환경을 넘어 십자가의 자리까지 나갔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나갔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들인 나는 천사장을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아버지와 하나지,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는 유대교를 옹호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요, 이스라엘 민족을 옹호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편에 있는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니 아버지와 일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체가 됐어요, 안 됐어요? 어디까지나 아버지와 한몸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니 십자가상에서 죽는 순간까지도 원수를 사랑한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어가면서까지 원수를 위해 기도했다는 사실은 역사상에 없는 위대한 승리의 팻말을 꽂은 것입니다. 아담이 하지 못한 것을 예수님이 하나님편에 서서 뜻을 중심삼고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웠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기독교 역사가 새롭게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와 같은 원칙을 따라 나가는 데 있어서 통일교회 문선생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 됩니다. 선생님 앞에는 가인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아벨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천사장, 즉 가인을 사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인과 싸우는 입장에 있어 가지고는 아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입장에 서야 된다구요? 가인을 사랑하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래야 아벨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벨의 위치가 어떤 위치라는 것을 원리적으로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나는 아벨이다. 나는 36가정이니까 72가정은 내말을 들어야 돼. 124가정도 430가정도 내 말 들어야 돼'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이 지금까지 해 온 놀음이 뜻적인 놀음이예요, 세상적인 놀음이예요? 지지리도 보기 싫은 세상적인 놀음입니다. 그래, 36가정이 아벨 가정입니까? 하나님과 일치 되었어요? 아벨 가정이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에 일치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