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자녀의 날을 맞아 반성해야 할 것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5권 PDF전문보기

여러분이 자녀의 날을 맞아 반성해야 할 것

하나님은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2천년 동안 역사해 나오셨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 아들딸의 책임은 무엇이냐 하면 오시는 부모님에게 효자 효녀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도리를 다했더라면 부모가 수모의 길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부모가 그 자녀의 책임까지 맡은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자녀의 도리와 부모의 도리를 같이 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수십년의 역사과정을 지내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1970년 음력 10월 1일, 11회째 자녀의 날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 자녀의 날을 맞기까지의 역사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 양자의 자리에서 직계의 자리를 걸어 놓고 부모 앞에 효성을 다하는 것이 유대교의 사명이었습니다. 양자의 자리에서 직계 자녀의 책임까지 맡아 효자 효녀의 책임을 다하여 예수를 부모로 완전히 모셔서, 그의 뜻이라면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중하게 여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녀의 명분을 갖출 수 있는 유대교의 기반이 형성되었더라면 예수님에게 죽음길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예수님이 수난을 받기 전에 자녀가 수난을 막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자녀에게는 부모의 죽음길을 막고 효성의 도리를 다하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유대교가 자녀의 책임을 다했더라면 예수님은 죽음길을 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교는 자녀의 책임을 못 하고 부모이신 예수님을 배반했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길로까지 몰아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적 구원섭리의 한 기준을 세워 영적으로 자녀를 다시 수습하여 세계적인 발전의 기반을 갖추어 나오셨습니다. 그 세계적인 기반이 기독교입니다.

여기에서 기독교를 중심삼고 영적인 자녀의 기반은 닦아졌지만, 영적 기준만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이 기준과 일치될 수 있는 외적 기준을 갖추고자 하나님은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영육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주관권을 만들어놓은 것이 민주주의세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민주주의세계의 사상적 중심이요, 섭리적인 중심인 기독교가 오시는 부모 앞에 참다운 효자와 충신의 도리를 다하여야 합니다. 하늘의 부모로서, 혹은 하늘의 주인으로서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올 때 자기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바쳐 충성과 효성의 도리를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가 그런 터전을 마련했더라면 오시는 부모 앞에 수난의 길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부모의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 이상을 실현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찾아온 이 한국을 중심삼고 되어진 사실을 보면 그렇지 못했습니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새로운 주권을 건설하고, 역사적인 뜻을 계승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유당 정권이 기독교와 야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자녀의 입장에서 책임을 다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다시 수난의 길을 거듭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놓인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수난의 역사입니다.

이 한국에서의 통일교회의 수난의 역사가 통일교회의 수난의 역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노정은 역사적인 수난의 노정으로서 그 노정에는 하나님의 6천년의 수난의 노정을 연장시켰다는 슬픈 내용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민족의 수난의 길을 피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수난의 길에 머물러 있는 것도 뜻을 따르지 못한 연고요 그에 대한 탕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지금까지 사오십여 년 동안 수난의 길을 걸어온 것은, 뜻을 대할 수 있는 섭리의 터전에 서 있던 기독교가 뜻을 받는 사명을 내적 외적으로 완전히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70년대를 맞이하였습니다. 이제 이 70년대를 하나의 분기점으로 삼아서,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런 뜻을 가진 자녀의 날입니다. 이 자녀의 날을 맞이할 적마다 반성하고 또 다짐해야 할 것은, 과거에 자녀로서 책임을 하지 못한 한을 풀어 드리는 한 날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날을 중심하여 우리가 새롭게 결심하여 자녀의 책임을 못 한 유대교와 기독교의 입장을 탕감복귀하고, 역사적인 모든 승리를 다짐하는 입장에서 하늘 부모 앞에 부족함이 없는 효자 효녀로 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자신을 발견하고 자각하는 입장에 서야만, 이날을 맞이하는 크나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