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서 가르치는 도리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9권 PDF전문보기

종교에서 가르치는 도리

내가 여기 강릉에 올 때에 대관령을 넘어왔습니다. 차를 타고 오기는 했지만 참 힘들었습니다. 강릉에서는 대관령이 자랑거리지요? 강릉도 자랑할 만하지만 대관령도 자랑할 만할 겁니다. 옛날에 이 대관령을 넘나들던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들일 것이냐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선한 사람들도 넘었을 것이지만 악한 사람들도 많이 넘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에서 산 사람들 중에는 옛날 정배(定配)되어 온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배되어 온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대관령 고개가 70리 정도 되는데 그 고개를 넘어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남들은 살기 좋은 평원에서 사는데도 불구하고 산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겠냐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무식하거나 거지같은 사람들이라면 모르지만 원대한 뜻을 품은 사람이라면 그러한 생활은 정말로 뜻 있는 생활인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강릉이 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선을 추구하며 가는 길은 편한 길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의 가르침입니다. 종교의 경서치고 고행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경서가 없습니다. 고행을 가르치지 못하는 종교는 가짜입니다. 무슨 종교이든지간에 사람은 온유겸손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육신은 온유겸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육신은 어떤 것이고 딛고 올라서려고 합니다. 그렇지요?

저기 대장장이 할아버지 오셨군요. 저 영감님도 젊었을 때는 불도 딛고 올라서려는 성질을 갖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 늙기를 잘했지요? 겸손하려고 하는 것이 제일 어려웠지요? 영감님은 온유겸손해야 되겠어요. 내가 훈련을 시킬 것입니다. 사람의 육신은 누구한테 한 대 맞으면 두 대를 갈겨야 시원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종교인들은 온유겸손해야 합니다. 요즘 표현으로 말하면 못난이가 되라는 것입니다. 성서에는 바른 뺨을 맞으면 왼편 뺨까지 내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요즘의 젊은 사람들 같으면 해먹겠어요? 속에서 불이 나서 못해 먹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가르치느냐? 알고 보니 그렇게 가르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선생님의 성격도 대단히 극단적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와 싸워 가지고 항복을 받아 보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매를 맞고 살지 않았습니다. 옛날 학생시절에도 누구하고 싸움이 붙으면 항복을 꼭 받아야만 직성이 풀렸지 절대로 못난이 취급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씨름에 대해서는 내가 전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나를 누가 마음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던 내가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의 도를 닦도록 천도의 길을 알고 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겠기에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한 것입니다. 천도의 길을 가려면 온유겸손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먹질과 혈기를 부리는 것하고 온유겸손하는 것하고 어느 것이 편하냐 하면 온유겸손한 것이 편합니다. 혈기를 부리면 있는 것까지 다 팔아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혈기를 참으면 없던 것도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종교든지 선한 길을 가라고 가르치는 것이며, 그 선한 길을 가기 위해서는 수난의 길도 감수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온유겸손해야 되는데, 온유겸손뿐만이 아니라 희생봉사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온유겸손은 괜찮은데 희생봉사까지 하라고 하니 젊은 사람들이 그것을 하려고 하겠어요? 기분이 영 나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 젊은 시절에 그렇게 해 가지고는 앞으로 밥은 커녕 죽을 빌어먹기도 힘들겠다고 생각들을 할 것입니다.

희생봉사를 하고, 남을 위해서 내 생명을 버릴 수 있고, 이웃을 위해서 내 생명을 바치면 위에서 큰 사랑이 내려온다는 겁니다. 그러니 죽으라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죽으라는 거예요? 나를 위해서 죽어야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겁니다. 그러면 누구를 위해서 죽어야 되는 것입니까? 「남을 위해서입니다」 남을 위해서 죽는 것이 곧 선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예를 든 것이지만, 뜻을 위해 가는 길이나 이해하고 넘어갑시다.

선한 사람이란, 남을 위해서 희생을 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자기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보다 선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집안에서 효자가 되려면 그 집안의 누구보다도 자기가 먼저 희생해야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아버지 어머니한테도 그래야 합니다. 자기는 죽어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 어머니의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또, 형제들끼리 화목하게 지내려면 열 형제가 있어도 열 형제를 전부 위해주고 그들의 육신을 자기 육신 사랑하듯이 사랑해 주고, 그들의 할 일을 대신해 주겠다고 나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할 짓입니까, 못할 짓입니까? 할 수야 있겠지만 그 일이 쉬운 일입니까, 어려운 일입니까? 「어려운 일입니다」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어려운 일을 여러분더러 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를 잘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