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2권 PDF전문보기

진정한 사랑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나라를 사랑하고 뜻을 사랑하자' 하고 말은 잘합니다. 나라를 사랑하기 전에 개인을 사랑하라, 나라를 미칠듯이 사랑하려면 개인을 미칠듯이 사랑해 보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하기 전에 개인을 위하라는 것입니다. 나라의 선은 큰 선이기 때문에 큰 선을 찾기 전에 개인적인 작은 선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개인과 개인의 선을 합하여 큰 선으로 규합하기 전에는 나라의 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개인입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나오면서 그 누구를 얼마나 사랑해 보았습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몇 년, 몇십 년 동안을 교회에 다니면서 자신의 마음깊이 사무친 사랑을 가지고 아버지가 동조하는 심정의 자리에 서서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그대들이 저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한 생명을 위해서 며칠 동안이나 금식을 해보았으며, 그 생명을 위해 몇 달 동안이나 피땀을 흘려 보았느냐? 문제는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말이야 '하나님을 사랑한다. 나라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겁니다. 그런 말은 공중에 뜬 말입니다. 사랑은 자기를 중심삼은 입장에서 하게 되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대신하여 그 사람의 입장을 옹호하고, 그 사람의 입장을 받들면서, 그 사람의 입장을 세우는 데서 비로소 사랑이란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야 이놈아 ! 너는 내 종이다'라고 말합니까? 그를 누구보다도 높여 주고 누구보다도 위해 주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자 하는 자리에서 사랑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나를 중심삼고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 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어린 아기를 사랑하는 부모의 사랑은 순결한 사랑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를 대하여 전체를 아는 부모가 아기보다 더 모른다 하는 자리에서 그 아기를 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열 사람을 위해 산 사람이 있다면, 그 열 사람이 복받게 될 때 그 복은 자기 복이 되는 것입니다. 동네의 옆집에서 잔치를 하게 될 때, 그 동네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심부름하는 사람은 그 옆집의 잔치가 자기 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기쁨의 터전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열 사람이 복을 받게 되면, 열 사람을 위하던 그 사람은 복을 못 받는다 하더라도 복의 그림자는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혜택받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위해 사는 사상, 이 사상이 무서운 사상입니다. 선은 전체를 위하고 전체의 중심이 됩니다. 전체를 위해 가지고 하나의 사랑으로 묶고자 하는 자리는 전체의 중심이 결정되는 자리이기에 선이 임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해서 피땀을 흘리면 잠을 푹 자도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남을 위해서 피땀을 흘리면 가뿐히 잘 수 있습니다. 입체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구나,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를 버릴 수 없겠지' 하는 것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나를 중심삼고 좋다 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오늘은 좋았다. 배부르다' 하면 거기서부터는 배고픔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좋았다고 하면 끝장이 나지만 남을 위해서 좋을 수 있는 길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