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남아지는 무리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3권 PDF전문보기

미래에 남아지는 무리

참다운 길, 참이라는 것은 수난의 과정을 거쳐가는 것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선의 요소를 중심삼고 플러스 마이너스의 자연적 환경에 있어서 행복의 여건이 부합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극이념을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성을 갖추는 데에서 비로소 미래의 행복의 터전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단을 사랑하는 통일교회의 젊은이들이여! 여러분의 갈 길이 무엇입니까? 나는 편안한 길을 가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생하는 길을 가라는 말은 여러분이 충분히 복받을 수 있는 말입니다.

민족정기를 되찾기 위해서 망할 때 망하더라도 한판 싸우겠다는 무리는 그냥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보여지는 실상과 더불어 박자를 맞추고 모든 환경에 환영받는 것을 중심삼아 자기의 일신을 맡겨 버리는 입장에서 행복을 구하는 무리는 그냥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어떠한 길에서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강인하고 끈기 있는 철두철미한 사상을 가지고 내일의 시련도상을 염려해야 됩니다. 오늘의 시련이 문제가 아니라 내일의 시련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오늘 아무리 승리를 자랑하고, 아무리 영광의 절정에서 환영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가 한때 잘못하여 걸리는 날에는 참소를 받고 쪼개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근세사에 있어서 우리들이 목격해 보고 체험한 사실이 아닙니까? 민족의 수난길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일신이 선의 실적을 남기고, 내일의 소망의 봄날을 맞이하기 위해 자기를 뿌려서 민족의 새로운 법도를 세워야겠다는 사상을 가지고 드러나지 않고 거름이 되고 비료가 되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은 기필코 민족 앞에 환영받고 민족의 정기를 이어받아 그것을 더욱 배양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 어디에 하늘 뜻을 위해서 하늘을 중심삼아 가지고 내일 죽더라도 가겠다고 다짐하는 처량한 무리가 있다면, 여러분과 여러분의 후손 앞에 책임자로서 남아질 수 있는 무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흘러가는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태양빛이 내려쬐고 바람이 불어치는 가운데에서도 뻗어 나갈 수 있고 생명의 요소를 흡수할 수 있는 자력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자기 앞에 크나큰 시련이 오더라도 그것을 책임지고 싸워 나갈 수 있는 책임자가 되어야지, 현재보다 못한 입장에 처해 행복을 찾아 나간다면 미래에 남아지는 무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할머니(어떤 할머니를 지칭)가 옛날에는 앞에서, 누가 보지 않는 자리에서 뜻을 위해 희생해 나가더니 요즘에는 그런 것 같지가 않아요. 얼굴을 보면 젊은 것 같은데…. 머리카락이 조금 세었다면 물들이면 그만이라구요. 나도 변하게 되면 저렇게 될 것이냐? 백발을 휘날리는 팔십, 구십이 되더라도 '젊은이들아, 가자' 하고 호령할 수 있는 사나이가 될 것이냐? 아니면 비참하게 죽어가는 사나이가 될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죽음을 딛고 일어서지는 못할지라도 정의에 불타 하늘을 위해 충효의 도리를 다하는 자신이 되고자 할 때, 그 자리는 하나님이 염려하시는 것입니다. 반항적인 자식을 가진 부모는 그 자식이 현재에 아무리 거지 신세가 되어 지팡이를 들고 문전 구걸하는 입장이라도 앞날에 누구보다 당당한 자식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나를 바라보실 때에 낙망과 실망으로 얼룩진 패망의 대신자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소망의 세계 앞에 있어서의 싸움의 기수로서 내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요구하실 것이 아니겠어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선의 기준을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 제일 가까운 선한 길이 통일교회의 길입니다. 그것을 만들기 전에 내가 가려고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일시에 폭발하더라도 이 기반을 만들어 놓고 갈 것입니다. 만일에 그 이상의 기반을 만들 때까지 피눈물을 흘리고 정성들이며 불철주야 노력하는 길에 있어서 앞에서 선도할 수 있는 한 사나이가 나타나면 하늘은 불시에 악을 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한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 그런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 전부를 희생시켜서라도 구해야 되겠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외적인 분야에서 그런 아들딸의 모습이 없다면 나 자신을 통해서 그런 아들딸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해야 됩니다. 복귀의 원칙을 볼 때 이런 상극적인 운명이 출발한 하늘의 서글픈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들은 천사 세계의 무리와 같은 모습밖에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원한이 뜻길 앞에 가로놓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은 몇백 배의 소원을 갖고 몇천 배의 수고를 해야 되겠습니다. 원수가 막을 수 있는 수난길이라면 내 목이 찔리더라도 그 원수를 찔러 죽여야 되겠다는 결의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나를 따르려거든 바람직한 관계를 맺고 따라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통해 책임을 완수해 가지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자기 생명을 부탁하며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성교회보다도 더 참신하고 더 멋지게 해야겠다는 사람이 누구냐?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나를 찾아오던 역사과정에 심을 수 있는 한 생명이 되겠다고 나를 맡기고 죽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충신이 갈 수 있는 사랑의 길입니다. 자기의 아들딸을 이렇게 만들어 할아버지 앞에 연결시켜야 합니다. 우리 집은 천추만대에 어떤 민족에게도 지지 않는 가문이 될 것이라고 자랑하고 싶고 그런 일가를 만들고 싶기에 자식에게 이것을 귀결시키는 것이 부모가 가르칠 수 있는 효자의 도리가 아니겠어요?

좋은 것을 먹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좋은 길로 가는 것을 기뻐하지 마십시오. 아직까지 우리는 훈련기간입니다. 아직까지 우리 앞에 치열한 투쟁의 노정은 끝나지 않았고, 내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치열한 투쟁의 노정은 끝나지 않았으며, 내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맹세한 그때를 아직 맞지 못했습니다. 내가 갈 때가 오면 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를 볼 때, 통일교회의 한 식구로서 남아질 수 있고,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 앞에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조상적인 씨가 되어야 됩니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