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기를 바란다면 시대와 짝하여 살려고 해서는 안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3권 PDF전문보기

잘살기를 바란다면 시대와 짝하여 살려고 해서는 안 돼

이번 전도기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36가정, 혹은 72가정, 124가정, 430가정, 777가정 중에서 어떤 가정이 우리가 본받을 가정이냐 할 때, 잘먹고 잘사는 가정을 보고 본받을 가정이라고 합니까? 이렇게 전체가 동원될 때는 어느 누구보다도 선두에 서서 전체의 어려움을 자기의 어려움같이 여기고 전체의 수고를 혼자 책임지겠다고 허덕이는 사람이 있게 될 때에, 그 희생의 범위가 크고 깊고 넓을수록 그런 사람을 보고 본받을 사람이라고 하지, 큰 것은 제쳐놓고 자기 혼자 좋겠다고 꼬리치고 다니는 사람을 본받을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 가운데에는 본받을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래요, 안그래요?

그러면 남아지기를 바라는 사람들, 혹은 후대에 복받기를 바라는 사람들, 선하기를 바라는 사람들, 잘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시대와 더불어 짝하여 살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시대와의 간격이 멀면 멀수록 높은 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꿈도 못 꿀 그런 세계를 향하여, 그런 이상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그만큼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그렇게 산 사람이 있다 할진대 이 세계에서는 망하고 몸뚱이는 죽어 없어질망정 그가 살고 간 사상과 선의 실적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승리의 영광을 받는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터전이 다시 한번 재봉춘하기 때문에, 죽었던 그 사람도 부활할 수 있는 영광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지요?

예수님은 유대교인들이 반대하는 자리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반대하는 자리에서, 그리고 로마의 위정자들이 반대하는 자리에서 죽어갔지만, 그 시대의 로마나 이스라엘 민족, 유대교로부터 치리받을 수 있는 내용을 중심삼고는 하루도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당시에 살고 있던 세상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래야 맺을 수 없는 별다른 가정과 별다른 나라와 별다른 세계를 위하여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인하고 온 인류가 공인하고 미래의 세계가 환영할 수 있는, 공인된 터전 위에서 살았기 때문에 누구도 그를 점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누구도 그를 침범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음의 자리에 나가면서도 당당했던 것입니다. 시대의 지배를 받아 내 몸뚱이는 죽더라도 내 사상은 철석같은 터전이 되고 중심 뿌리가 되어 세계를 움직이고도 남을 수 있고, 세계의 중심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생애를 마치고 간다며 당당하게 걸어간 것이 십자가의 길이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시대에 죽었지만 미래를 위해 죽은 것입니다. 또한 예수는 그 시대에 죽었지만 그의 희생은 그 시대와 더불어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것으로 남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속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혜택을 통하여 그의 뜻을 이어받은 사람들은 그의 사상을 중심삼고 씨족이 될 수 있는 것이요, 민족이 될 수 있는 것이요, 국가가 될 수 있는 것이요, 역사와 더불어 발전하는 문명권을 중심삼고 종말시대에 가서 소망의 천국을 이룰 수 있겠기 때문에 예수님이 재림이란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뿌려 놓았으니 내가 거둔다는 것입니다. 내가 동기가 되었으니 결과도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러한 자신감을 가지고 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이 땅에 올 때는 실패한 입장이 아니라, 승리한 입장에서 세상 앞에 선의 권위를 갖고 오시는 것입니다. 개인 앞에, 가정 앞에, 혹은 민족 국가 세계 앞에 당당하게 선의 권위를 들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민이 그분 앞에 머리를 숙여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