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의 입장과 사명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6권 PDF전문보기

세례 요한의 입장과 사명

그러면 그러한 대표자가 누구냐? 유대교를 두고 볼 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러한 대표자는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냐 하면, 수많은 종교권에서 하나님이 세계적으로 선택한 대표적인 천사장형으로서, 천사장의 사명을 완결지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를 중심삼고 죽든지 살든지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그의 생명이 존속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요,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 아들을 위해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 요한은, 에덴에 있어서의 천사장이 아담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하나님과 아담을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태어나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존속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기뻐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빼놓고 기뻐한다면 그 기쁨은 하나님과 하나될 수 없는 것이며, 그가 아무리 가치적인 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예수를 만나서 가치적인 인연을 맺어 가지고 예수가 기뻐할 수 있는 가치의 내용과 접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빼놓고서는 그가 아무리 가치적인 생활을 했고 또 그의 생애가 아무리 거룩하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사랑하여 아담 때문에 천사장을 지었으므로 세례 요한이 이 땅 위에서 아무리 충성을 다한다 하더라도, 아담을 위하여 충성하는 실질적인 기반을 갖지 못하게 될 때는, 하나님은 그 충성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을 위하여 지었던 종, 즉 세례 요한의 사명은 아담을 통하여 완결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를 보면, 세례 요한이 예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원리적 관점에서 보면 그 6개월은 인간들의 6개월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6천년의 6수를 대표한 기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짓기 전에 만물을 지었고, 만물을 짓기 전에 천사세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에 아담을 지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단계의 기준에서 천사장의 입장을 대신하는 입장에 서야 했던 세례 요한을 예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나게 해서 제반 준비를 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유대교의 모든 전통사상을 일신에 귀결시키고 안팎으로 나라와 교회를 움직여서 충성의 도리를 다하여 유대교단과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을 순수하게 받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함께 예수를 위하여 온갖 충성을 다해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의 모든 외적인 문제를 책임져야 되고, 내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것도 협조를 해야 했던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어떤 문제까지 협조해야 했느냐?

타락을 천사장이 시켰기 때문에 천사장 입장이었던 세례 요한은, 예수 앞에 있는 안팎의 모든 사연을 대신 책임지고 예수가 복귀의 사명을 하는데 협조를 해줘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의 상대를 결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역시 예수 자신이 주도적으로 하면 안 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타락을 천사장이 시켰기 때문에 천사장을 복귀한 입장에 선 세례 요한이 예수의 안팎을 가려야 할 복귀의 중대한 문제, 다시 말하면 신부를 복귀하는 문제까지도 전폭적인 책임을 져야 했다는 것입니다. 쓰라림과 고통이 있으면 누가 책임져야 되느냐? 천사장이 잘못하여 그런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세례 요한 자신이 그 모든 어려운 문제를 일신에 책임지고 예수가 가는 길 앞에는 환난이나 시련이 일체 없게끔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당대의 세례 요한에게 맡겨 준 사명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태어난 사가랴 가정은 어떤 가정이냐? 그 가정과 마리아 가정은 인척간입니다. 마리아는 세례 요한의 이모가 되고, 예수와 세례 요한은 이종 사촌이 되는 입장이었습니다. 가정적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어요. 그러므로 만일에 요셉 가정하고 사가랴 가정이 하나되고 예수와 세례 요한이 하나되었다면 예수는 고통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가 요셉 가정에서 자랄 때 목수의 조수를 하기 전에 사가랴와 세례 요한의 협조를 받았다면, 그의 일생에 목수의 조수 생활 30여 년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뜻적인 입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실 바의 메시아를 위해서 준비된 사가랴 가정에 있어서나 사가랴 자신에게 있어서나, 또 30여 년의 생애 동안 메시아를 맞기 위해 수고의 노정을 갔던 세례 요한에게 있어서도 예수에게 목수생활을 시키고 집을 떠나 외로운 생활을 하게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입장에서 내적인 사정을 통하고 내적인 사연을 의논해 가면서 이스라엘 나라와 복권을 위해 안팎으로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어려운 문제는 세례 요한이 책임지고 재미있고 기쁜 일은 예수 앞에 재료로 줄 수 있게끔 개인 개인이 안팎으로 갖춰짐과 동시에 가정이 안팎으로 갖추어져야 했습니다. 유대교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 예수 가정이요, 이스라엘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 세례 요한 가정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를 중심삼고 안팎으로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결정 지었더라면 그것이 핵심이 되어 가지고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를 자동적으로 하나로 흡수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