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와 요셉이 책임 못하여 집을 떠난 예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0권 PDF전문보기

마리아와 요셉이 책임 못 하여 집을 떠난 예수

마리아가 책임 못 한 것을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더더구나 요셉은 의붓아버지로 예수를 못살게 굴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친척들도 예수가 사생아라는 소문을 듣고 손가락질하고 저주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게 되면 예수님이 열두 살 때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 가서 제사장과 교법사들을 만나 토론한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는 좋은 일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거 왜 그랬느냐?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 성전에 갈 때 예수를 데리고 간 것은 틀림없습니다. 어린 예수를 데리고 가는 요셉과 마리아는 어머니 아버지로서 예수를 지켜 봐야 하고 예수와 함께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셉과 마리아는 사흘 동안 고향길을 돌아갔다가 와 가지고 예수를 만나게 됐어요. 사흘 동안이나 예수를 성전에 남겨 두고…. 어미 아비라는 작자 들은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왜 돌아갔느냐 이거예요. 좋아서 돌아간 줄 알아요? 예수 때문에 트러블이 생겼다는 거예요, 예수 때문에.

요셉이 마리아한테 예수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게 될 때, 거기서 언제나 문제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남자로서 그 아기의 아버지를 추궁하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느냐? 물론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요셉이 마리 아를 데려왔지만, 그 여편네가 자기도 모르는 아기를 배어 가지고 낳았는데 그 아기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지 않을 사내가 어디 있겠어요? 트러블이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틈바구니에서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을 아신 예수는 집을 떠나갔다구요. 집을 버리고 나갔다구요. 3년 공생애노정은 떠벌이꾼으로서 동네방네 소문을 내놓으면서 교회와 나라 앞에 선동분자로 몰려 가지고 죽을 것이 아니라구요. 누구도 모르게 뜻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요셉과 마리아가 하나되어 만들어 가지고 예수를 협조했더라면 뜻은 이루었을 것인데 요셉과 마리아가 책임 못 했기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복중에 있을 때부터 요셉과 마리아가 서로서로 불화했던 것이 동네에 소문나게 됐다는 거예요. 그럴 게 아니예요? 마리아 복중에 있는 아기가 요셉의 아기가 아니라고 낳기 전에 이미 동네에 전부 소문나 버렸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친척들마저 전부 다 예수를 의붓자식으로 취급하고 사람 취급을 안 했다는 거예요.

그와 같은 동네에서 예수를 태어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할수없이 그 누구도 모르는 베들레헴 같은 데서 예수를 탄생케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라구요.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탄생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타나지도 않았다는 거예요.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까지 거리가 얼마냐 하면 시오리밖에 안 돼요, 시오리.

배후에 그러한 서글픈 사정이 있는데 제자들이 성경을 썼으니 그걸 누가 알겠느냐 이거예요. 곡절에 묻혀 있는 사실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모르고 있다구요.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와서 그러한 미지의 사실들을 밝힐 수 있는 때를 가졌기 때문에, 기독교가 광명한 새아침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예수님이 제자를 대해서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한 사실, 이게 얼마나 비참하냐 이거예요. '너는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했다' 이럴 수 있기를 하나님은 바랐을 것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것이 예수의 소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디서 그런 사람을 만났느냐? 자기 가정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서 만났느냐? 못 만났어요. 자기 형제를 통해서 만났느냐? 못 만났어요. 자기 일족을 통해서 만났느냐? 못 만났어요. 자기 교회를 통해서 만났느냐? 못 만났다 이거예요. 이스라엘 나라를 통해서 만났느냐? 못만났습니다. 그 나라의 위정자들, 주권자들, 혹은 교회의 교법사들을 통해서 만났느냐? 못 만났습니다. 상류계층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만났느냐? 못 만났다 이거예요.

할수없이 중류계층의 사람도 아닌 맨 하류계층의 지지리 못난 어부들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지금도 대한민국에 있어서 어부 하게 되면 사람취급을 안 하는데 2천년 전 그때는 어떠했겠어요? 여러분, 갈릴리 해변가에 가 보면 우습다구요. 옛날 베드로가 살던 집을 가 보면 토굴이라 구요. 형편이 무인지경이라는 거예요. 그런 세상에서 아주 비참한 무리들, 할수없으니까. 죽기 전에 있는 정성을 다해서 땅 위에 사랑의 인연을 펴고 가야 할 텐데 불구하고 펼 수 없게 되니까, 몰리고 몰렸으니 인종지말(人種之未)들을 붙들고 최후의 소원성취의 일념을 바라 가지고 허덕이던 노정이 예수의 3년 공생애노정이더라 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