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여인의 불신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2권 PDF전문보기

허여인의 불신

그 나이 많은 여인을 만난 이후 선생님은 그 집단에 사람을 보내서 허부인에게 선생님의 집단이 무엇인지를 기도해서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허부인은 하나의 큰 징후를 기대했지 한 젊은 남자 따위는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난 그녀는 그가 큰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돌려보냈습니다.

그 후에 선생님은 한 젊은 여자를 그 집단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집단으로부터의 반응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허부인은 그녀의 집단의 간부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또 다른 계시를 받았는데, 그것은 춘향이가 감옥에서 그녀의 남편을 만난 것처럼 그들이 주님을 만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너는 춘향이가 감옥에서 그녀의 남편을 만났던 것처럼 주님을 만날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북한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점령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공산주의자들은 이 집단이 사람들로부터 많은 기부금을 모금해서 좋은 옷들을 만들고 좋은 집을 샀다는 것을 알아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집단을 그때의 종교적 사기꾼으로 고발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간부들을 감옥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때에 선생님도 그 집단과 관련되어 있다고 고발되었습니다. 실제로 선생님은 아무런 관련도 없었으나 그런 식으로 고발당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집단의 지도자와 같은 방에 갇혔습니다. 허부인 밑에 그집단을 이끌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선생님과 같은 방에 있었습니다. 그 날이 1947년 8월 11일이었습니다. 그 집단의 간부들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매우 가혹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허부인에게 만일 그녀가 계시를 받을 때 그녀의 배가 경련을 일으킨다는 것을 부인한다면 그녀는 풀려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김일성의 시대였고, 그는 종교를 박해했으며 모든 종교를 말살시키고자 했습니다. 허부인의 남동생이 심한 고문으로 죽었습니다. 허부인도 또한 심하게 고문을 받았고, 그녀의 옷들이 거의 다 찢어졌습니다.

그 당시에 선생님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고문을 당했습니다. 선생님은 10월 31일에 석방되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거의 죽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선생님이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다시 살아난 것은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허부인 다음 가는 사람이 있었던 방으로 들어갔던 때는 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밤 11시에 그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밤 그 사람은 선생님에 관해서 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선생님이 그 방으로 들어갈때 그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전에 그런 경험들을 했고, 그래서 선생님은 그런 환경들에 매우 익숙했었습니다. 선생님은 변소 옆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 방 안에는 많은 죄수들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감방장(監房長, 허부인 집단의 지도자)이 말했습니다. 그 방의 규칙은 가장 늦게 들어온 사람이 가장 나쁜 자리에서 잠을 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감방장은 일어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새로 오신 분은 특별한 분이니 자기 옆에 앉게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사람 옆에 앉았을 때 그는 선생님에게 절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무엇 때문에 절을 하느냐고 물으니, 그는 지난밤에 한 계시를 받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계시에서 선생님에게 절을 하는 허부인을 보았고 그녀가 '이제 내가 만나고 싶었던 그 사람을 만났다'고 했는데 선생님의 얼굴을 보니 선생님이 그 사람이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아침에 선생님은 그에게 '나는 당신이 체험해 온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으니, 나에게 당신이 경험해 온 모든 것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의 집단에서 일어났던 모든 것을 설명했습니다. 선생님은 모든 복귀의 원리를 알았지만, 그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그 정도까지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선생님도 그들이 얼마나 고생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공산주의자들이 만일 그들이 하늘로부터 계시받았던 것을 부인한다면 그들을 석방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에게 '만일 당신이 공산주의자들 앞에서 당신이 체험해 온 모든 사실들을 부인하기만 한다면,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그에게 '만일 허부인이 거짓말이라도 해서 그녀가 체험했던 것을 모두 부인한다면 한 젊은 사람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한다는 것을 허부인에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말을 허부인에게 전달하도록 그에게 부탁했습니다. 점심시간에 점심이 배급되었을 때 그 젊은이는 허부인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말했던 모든 것을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허부인은 춘향이가 감옥에서 그녀의 남편을 만났던 것같이 그녀가 주님을 만날 것이라는 것을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아무도 못 보았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말을 따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부인했기 때문에 석방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석방된 뒤에 허부인의 남편이 선생님의 방으로 왔습니다. 선생님은 그녀의 남편에게 선생님이 그 젊은이에게 말했던 것을 얘기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자기 아내를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생님의 말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 자신이 한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선생님은 편지를 쓰면 그것은 다른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9월 18일 아침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식사 때에 밥을 배달하는 사람한테 그 편지를 허부인에게 전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녀가 그 편지를 읽고 나서 찢어 버리려고 하였으나, 그때 그녀는 공산당 감시원한테 들켰습니다. 그것은 그 종이를 갖다 준 그 사람이 간수에게 알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쪽지를 쓴 사람은 하늘의 사명을 가진 사람이다. 당신은 기도를 해서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 봐야 한다. 만일 당신이 계시받았던 모든 것을 부인한다면, 당신은 석방될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그 쪽지는 간수에게 발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1947년 9월 18일 오후 2시의 일이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남한에 있는 미군의 스파이로 고발되었고, 선생님이 소련 조사관에 의해서 심문을 받았으나, 선생님은 무죄라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선생님은 10월 31일 오후에 풀려났습니다. 선생님이 자세한 것을 얘기하려고 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입니다. 허부인과 그녀의 추종자들은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들은 모두 학살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