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9권 PDF전문보기

선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개인이면 개인이 좋기를 바라는 기준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가정이면 가정이 좋기를 바라는 기준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나라면 나라가 좋기를 바라는 기준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 기준이 갑이라는 사람이 다르고 을이라는 사람이 달라 가지고는 좋은 것을 바란다는 사실이 우스꽝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 사람, 만 사람 전부가 좋다고 하게 될 때는 '이건 이렇기 때문에 좋다'고 할 수 있도록 다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 제시되어야지, 그런 내용의 제시가 없으면서 '좋다'고 한다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면, '좋다' 하는 데는 어떻게 좋아야 되느냐? '개인은 이렇게 좋아야 되고, 가정은 이렇게 좋아야 되고, 나라는 이렇게 좋아야 된다'고 하는 어떤 모델(model)이라 할까, 공식이라 할까, 어떤 하나의 목적체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게 원리예요.

역사라는 것은 악을 중심삼고 발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이 성(盛)하게 될 때 역사는 후퇴하기 마련입니다. 악을 넘어서 가지고 선이 성하게될 때 그 역사, 혹은 역사적인 환경, 개인의 환경이나 가정의 환경이나 국가의 환경은 발전하기 마련입니다. 그게 원리예요.

그러면 선과 악을 제시할 수 있는 개인적인 표준은 어떤 것이냐? 이것이 지극히 문제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두고 볼 때, 신(神)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양심적으로 살면 된다. 양심적으로 살면, 내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으면 당당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양심을 가진 사람, 그 양심을 가졌다는 그 사람이 전부 다같으냐? 같지 않다구요. 얼굴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그 양심이 처해 있는 자리도, 위에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아래에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 하나의 선을 그어 놓으면 이 수직선을 중심삼고 횡으로 뻗어 나갈 때 90도 각도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도 20도 30도 등 천태만상의 방향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위치와 방향이 전부 다를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적'이라는 그 기준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선하기를 바라는데 그 선할 수 있는 길이 어떻더냐 하는 것을 확실히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왜 선해야 되느냐. 왜 좋기를 바라느냐, 좋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수학으로 말하면 하나 플러스 하나 하면 둘이 되고, 여기에 셋을 가하면 다섯이 된다. 이런 결과적인 공식은 수학을 배우는 사람이면 누구에게서나, 역사를 초월하여 어떤 시대든지 똑같은 것입니다. 똑같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나 규정은 설정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심적'이라는 그것이 어떤 자리에서 양심적이냐? 그게 문제라구요. 올라간 자리냐, 내려간 자리냐? 어떤 한계선을 벗어난 자리냐? 혹은 이것이 아낙(內)이라면 어떤 위치의 아낙이냐? 여러분 자신을 보게 될 때, 여러분 자신은 지금 이 시간에 선생님을 만나 가지고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한낱 개인을 보더라도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어떤 기정적인 인연을 통해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아가씨면 아가씨, 총각이면 총각, 학생이면 학생을 보게 될 때, 이렇게 생긴 노정균이라는 학생이 있다 이겁니다. 그래서 '노정균!'하고 부르면 '예' 하고 답하는 것입니다. '너 무엇을 했어?' 하고 물으면 '저는 오늘 무엇을 했어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 사건은 간단한 것입니다. 그가 나타나서 한 행동이 혹 물을 떠 왔으면 물을 떠 온 사건에 귀결되지만, 이 물이 놓여질 때까지의 그 역사적인 인연이라는 것은 수천만년 까지 연결되는 것입니다.

물을 떠 온 그 손은 노정균의 손이되, 그 손은 노정균의 손만이 아닙니다. 그 손은 누구를 닮았느냐? 아버지 어머니의 손을 닳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손만을 닳은 것이 아닙니다. 할아버지의 손도 여기에 조금 닮은 것입니다. 또,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증조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 수천 대의 선조의 세포를 받은 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손을 중심삼고 보면 손 주식회사의 사장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눈을 봐도 그래요. 한 눈을 보면 그 눈이 깜박깜박하고 있는데, 그눈이 자기의 눈 같지만 자기의 눈이 아닙니다. 그것은 종합된 인연의 결실체로서 하나의 집약된 물건으로서의 눈입니다. 그러면 그 눈의 부분 부분을 보게 된다면…. 선한 선조의 눈을 닮은 부분은 좋게 보일 것이고, 악한 선조의 눈 세포의 일부를 받은 눈은 나쁘게 보일 것입니다. 선한 선조를 닮은 눈은 나쁜 것은 안 보인다고 하고, 좋은 것은 잘보인다고 그럴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을 것이라구요. 그걸 보면 그렇게 그것이 종합되어 가지고….

요즈음엔 머리카락 하나를 분석하게 되면 그 사람의 성질부터 직업까지 모든 것을 분석해 낼 수 있는 지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배후의 관계를 전부 분석할 수 있고, 처해 있는 환경도 분석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시대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의 한 부분, 지체라는 것은 자기의 것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욱 연결되어 있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