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를 통하는 길 외에 인간문제의 해결방안은 없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1권 PDF전문보기

메시아를 통하는 길 외에 인간문제의 해결방안은 없다

이렇기 때문에, 이것이 인류가 귀결지어야 할 최후의 희망봉이요, 가는 길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비참한 모든 역사를 안이와 행복으로 귀결지어 줄 수 있는 하나의 기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지어도 타당합니다. 그것이 만약에 성사되지 못하게 될 때에는, 아무리 과정이 행복하고, 아무리 과정이 진실되고, 과정에서 아무리 무엇을 가졌다 하더라도, 최후의 종착점이 천지의 근본 되는 하나님과 우리의 문제를 해결지을 수 있는 것이 되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이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단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예수님을 사랑하라고 결론지어 놓은 것입니다. 예수는 누구냐? 어떠한 분으로 왔느냐?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로 왔습니다. 그리하여 독생자로서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처음 받을 수 있는 독생자였어요. 부모의 사랑을 몽땅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외아들이 아녜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 역사 가운데에 독생자라는 이름은 위대한 말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독생자인데,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면 독생자라고 했겠어요? 옛날에 인류 시조 아담 해와를 하나님이 직접 지으셨지만, 그들을 다 사랑하시지 못하고 사랑의 품에서 빼앗기지 않았어요? 그러나 절대자의 사랑 가운데에서 절대자의 사랑을 받는 사람을 누가 빼앗아 가겠어요?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타락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미급한 자리에서 사랑의 대상권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하게 된 거라구요. 따라서 여기에 도달한 자리에서, 다시 말하면 타락한 조상이 체휼한 사랑 이상의 사랑을 체휼한 입장에서 왔기 때문에 비로소 사랑을 중심삼고 인류의 소망의 조상으로 등장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메시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를 통하는 길 외에는, 그 예수를 통하는 길 외에는 인간 문제의 해결 방안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버지 앞에 갈 자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는 그것을 극복하자는 거예요.

내가 어디서 왔느냐 할 때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숭이 새끼라고 하고 있다고요, 원숭이 새끼. 여러분이 원숭이 새끼예요? 오늘날 공산주의 논법에서는 인간이 노동에 의해 가지고 발전함으로 말미암아 인식권이 발전되고 가중된 지식적 터전 위에 서 가지고 인간이 됐다 이러는데…. 그래 원숭이예요? 차원이 다르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통일사상에서 본성론을 강조하고 나오는 거예요. 인간은 본성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종자가 다릅니다.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아이들은 벌써 좋고 나쁜 것을 가릴 수 있는 본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헌법을 몰라도, 학교를 안 가도 자연히 알게 됩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자신의 출발을 확실히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에서부터 출발했는지 사람에서부터 출발했는지 모르고 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라고요. 여러분들은 어머니 아버지가 낳아 주긴 했는데 나자마자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합니다. 나 혼자 나왔는데…. 혼자밖에 없는 입장에서 볼 때, 나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 역사는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거예요. 생각할 수 있는 무슨 밑바탕이 없으니 자기 멋대로 생각해서 '이럴 것이다. 이럴 것이다' 귀납적으로 추리해 가지고 '그럴 것 같다' 하는 결론을 내리지, '그렇다'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요. 그렇지만 자기가 친히 자라 가지고 산 경험도 있고, 또 사랑한 경험도 있는데 어떤 사람이 '너의 아버지 어머니는 없다'고 하면 그 당장에는 죽어서 없더라도 '야, 이 자식아, 왜 없어? 이러게 마련이라구요. 그놈을 쳐부수고 말지 끄덕끄덕하지 않는다구요, 안 그래요?

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기에서 우리 인간들이 해야 할 말은 무슨 말이냐? 오늘 제목과 같은 '미처 몰랐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자기 자신이 암중모색하는 자리에서 신음하는 자기 자체를 발견함과 동시에 '내 갈 길은 이렇고 나를 위한 분은 이러한 분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고 난 자리에서,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라고 발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나이가 있다면, 그 아버지를 어떻게 붙들었겠느냐? 어떤 모습으로 붙들었겠느냐? 그분과 나의 관계를 확실히 알면 알수록 자신은 어떻게 대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러이러한 줄 난 미처 몰랐습니다. 당신이 그러한 아버지이신 것을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고 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