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에서 온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3권 PDF전문보기

기쁨이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에서 온다

이러한 입장을 두고 볼 때, 사람의 마음 가운데는 무엇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마음 가운데는 반드시 무엇이 있느냐? 마음 가운데 있는 가치적인 내용을 분석해 보면 지(知), 정(情), 의(意)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떻더냐 하고 분석해 보면 지적인 요소가 있고, 의적인 요소가 있으며, 그 다음에는 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라는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작용을 하려고 하느냐? 결국에 들어가서는, 마음의 기준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뭐냐 하면 기쁨입니다. 기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기쁜 것을 기준 삼고 있다는 거예요. 슬픈 것을 기준 삼고 있지 않아요.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마음이 슬프고 몸이 슬프고 여러 가지 환경적으로 슬픈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다 기쁜 것을 표준하고 그 마음도 있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짜 기쁜 것은 뭐냐? 마음에 있어서 진짜 기쁜 것이 뭐냐? 보다 기쁘려면, 마음과 행동과 말이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기쁠 수 있는 목적을 대하는 데서만이 기쁜 것입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말과 행동이 하나되게 된다면 기쁨을 중심삼고 있으려고 하는데, 그 기쁨의 기준이 뭐냐 하면 정(情)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소위 심정이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지, 정, 의의 그 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말과 행동이 하나된 거기에 기쁠 수 있는 중심적인 정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준이 되는 정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보다 기쁠 수 있는 목적했던 바의 내용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치적인 내용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혼자는 기쁠 수 없는 것입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가지는데에서만이 가능합니다. 혼자 기쁠 수 있어요? 혼자 웃고 있으면 돈 사람이라고 합니다. 내가 여러분도 없는데 이렇게 혼자 열심히 얘기한다면 돈 사람입니다. 내가 말을 열심히 하면 그 내용을 중심삼고 여러분은 열심히 듣고 그 말에 하나되어 가지고 여러분도 기쁘고 나도 기뻐져야 되는 것입니다. 말하고 나서 슬프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쁘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야 말 참 잘했다. 그말 잘 들었다' 할 수 있는 자리가 벌어지면 들은 사람도 기쁘고 말한 사람도 기쁩니다. 그 말한 사람이 뭐가 기쁘냐? 아침부터 이야기를 하게 되면 땀을 흘려야 되는데, 땀을 흘리게 되면 자기 자체의 소모인데 뭐가 기쁘냐, 자기 자체는 소모인데 왜 기쁘냐 이거예요. 일을 열심히 했는데 그 열심히 한 보람이 있는 가치가 딱 완성되게 될 때는 기쁩니다.

왜 기쁘냐? 손해나면서 기쁜 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손해 나면서 기뻐하는 것은 도대체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왜 기쁘냐 하면, 내 마음의 기준하고 상대의 마음 기준하고 플러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목적을 중심삼고 말을 했으면 말한 것을 긍정하고 거기에 순응해 가지고 하나될 수 있게 되면, 그 마음에 또 하나의 마음이 합해지니까 둘이 되는 것입니다.

둘은 어떻게 된 것이냐? 혼자를 둘로 만든 것이 아니라, 둘이 합해 가지고 둘이 된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 입장에서 보면 결국은 '나는 하나를 얻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야 이거 내가 동기가 되었든 누가 동기가 되었든간에 서로서로가 하나씩 더 얻은 자리니까, 우선 손해난 것이 아니니까 기쁘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없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큰소리 한다 하더라도 상대가 없을 때 그 소리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투입하면 할수록 점점점점 더 없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상대가 있게 될 때는 투입하면 할수록 없어질 것 같은데, 어떻게 돼요? 없어지는 것 같은데 생겨납니다. 생겨나는 걸 보면 그것은 내 것이고 나도 그분에게 필요한 것이 되는 거예요. 손해나는 것 같은데 결국 플러스가 된다는 거예요. 그것은 어디서 있느냐? 기쁠 수 있는 데서만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기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은 혼자는 절대 될 수 없습니다. 상대적 요건이 적용되는 데서만이 기쁠 수 있습니다. 왜 기쁘냐? 상대라는 것은 제2의 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에 플러스하게 되면, 하나될 수 있는 번식적인 제2의 나로 등장하기 때문에, 둘이 됨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둘이 돼 가지고 뭘할 것이냐?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하나되는 거예요. 만사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마음도 상대적입니다. 마음이 어디로 가야 될 것이냐? 마음이 가는 길이 어디냐? 기쁠 수 있는 길을 가려고 합니다. 기쁘려면 어떻게 돼야 되느냐? 마음 기준이 세운 차원 높은 기쁨에 정적인 인연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서적인 내용을 빼 놓고는 행복이니, 희망이니, 무슨 뭐 기쁨 이니 하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있을 수 있어요? 기쁘면 웃는 것입니다. 기쁘다면 벌써 웃지요? 왜 웃어요? 웃는 데는 누구를 보고 웃어요? 혼자 웃어요? 혼자 웃으면 그건 돈 사람입니다. 웃는 것은 왜 그러냐? 자기를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웃을 때 석경(거울)을 보고 웃는 거예요? 안색이 달라지면서 표정이 달라지면서 웃는 것은 누구 때문에 웃느냐?

자기 때문에 웃어요? 상대 때문에 웃는 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왜 웃느냐 할 때, 내가 좋으니까 웃지, 거 왜 좋으냐? 나 혼자이기 때문에 좋지, 그래요? 웃는 것이, 왜 웃느냐? 좋아서 웃지, 좋은 일도, 왜 좋으냐? 혼자 있으면서 좋아할 수 있어요? 상대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돼 있죠?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있어 가지고 둘이 하나되어 있으면 웃기 마련입니다. 웃기 마련이니까 그것은 기쁜 것입니다. 기쁨의 표시는 누구로 말미암아 되느냐? 나로 말미암아 되지 않고 상대로 말미암아 되었기 때문에 내 표정은 상대를 위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석경을 보고 매일같이 웃는 녀석은 고독한 녀석입니다. 고독한 과부나 홀아비가 그렇습니다.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여러분이 결혼을 하기 전에는 석경을 많이 봅니다. 여러분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혼한 다음에는 '석경을 보기는 뭘 봐'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기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