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십대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4권 PDF전문보기

새로운 인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십대

여러분들은 이 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귀한 시절인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래지 않아서 학창시절을 끝내고 사회로 나가는 사람도 있겠고, 혹은 계속 학구의 길을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한 시대를 지내고 나면 다른 한 시대가 찾아오는 것은 인간세상의 순리인 것입니다.

뜻으로 볼 때에도 뜻의 길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개인의 복귀시대가 지나가면 가정의 복귀시대가 오는 것이요. 가정의 복귀시대를 다하고 나면 국가의 복귀시대, 국가의 복귀시대를 지나고 나면 세계의 복귀시대로 전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개인과 가정과 국가와 세계는 차원이 다르니만큼 그 벌어지는 환경과 사정도 각각 달라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여러분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음날 새로운 아침이 찾아오되, 그 아침은 보낸 날의 아침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일년이 가고, 혹은 십년이 감으로 말미암아 인생의 행로는 덧없이 죽음을 향하여 전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철모르던 어린 시절을 회고해 보면 까마득한 옛날같이 생각 될는지 모르지만, 더우기나 10대에서 20대의 기간은 가장 길고도 지루한 시절인 것입니다. 언제 내가 20대가 될 것이냐? 언제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갈 것이냐?

언제 내가 청년으로서 당당한 기개를 갖추어 가지고 인생의 참다운 모습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는, 10대에서 20대를 향하는 그 기간은 가장 지루한 기간인 것입니다. 국민학교 4, 5학년이 되게 되면 10대가 되어 열 살을 지나 그 학교를 졸업하고, 그 다음에는 중학 교에 들어가고, 또 그 다음에는 고등학교를 들어가 졸업반이 되는 이 스무 살 - 혹자는 20이 넘은 사람도 있겠지만 - 까지는 가장 긴 시절인 것을 여러분이 느꼈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20대가 지나가고 30대로 접어들게 될 때에는 그 20에서 30은 점점 가까와지는 것입니다. 또, 30에서 40은 더 빨리 가까와지는 거예요. 40에서 50은 더 가까와진다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점점 짧은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생에 있어서 제일 나이 먹기를 바라는 때는 어느때냐 하면, 10대에서 20대 사이입니다.

그러면 나이 먹음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느냐? 성인이 됩니다. 성인이 되면 어떻게 되느냐? 모든 것을 가릴 수 있습니다. 선이 어떻고 악이 어떻고, 인생이 가는 데 있어서는 이렇게 가면 안 되고 저렇게 가야 올바른 길이라고 모든 것을 가려 가지고 자기로서의 보람 있는 인생의 길을 찾을 수 있는 때가 20대로 넘어서는 때입니다. 10대에서 20대를 바라는 그 기간이 지루하다는 것은…. 새로운 인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내면 적인 갈구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길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렇게 지나는 가운데 어떤 사람은 중학교 시절에, 어떤 사람은 고등 학교 시절에 통일교회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국민학교나 유년주일학교 시절에 뜻을 알고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학교 시절이나 고등학교 시절에 뜻의 길에 접어들었을 것입니다. 이 뜻의 길을 알고 나서는 여러분이 과거에 느끼던 20대 시절과 알고 난 후의 20대 시절이 판이한 것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옛날에는 여러분들이 가야 할 인생의 길을 추구하고 모든 소망을 가지고 그 길을 찾아 나가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뜻의 길을 알고 난 후에는 입장이 다른 것입니다. 뜻을 성사시켜 나가야 되겠다, 뜻에 대한 책임을 내가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섰다는 것을 느낄 때에 들어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오래지 않아서 대학교를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회로 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과연 뜻이 원하는 길이 어떤 길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를 가려 가지고 올바른 길을 가기란 심히 어려운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말하는 뜻이 원하는 길, 진정한 뜻이 원하는 길이 어떤 길이냐 하는 것을 여러분은 똑바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자기 운명의 최후를 마감하는 그 순간에 있어서도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다하는 자리에서도 끝까지 뜻이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서 그런 최후를 마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뜻이 원하는 길을 맞춰 나가기 위해 30여 생애 동안 노력하면서 혹은 배척도 받았고, 혹은 어려운 생활도 했으며, 고독한 자리에서 신음도 했지만 그 모든 환경과 사연이라는 것은 오로지 뜻이 원하는 길을 세워 가기 위한 생애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뜻이 원하는 길을 가려고 몸부림쳤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중심삼은 제자들도 뜻이 원하는 길을 가려고 따라나섰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한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예수님이 원하는 뜻의 길에 동참해 가지고 같이 가려고 나섰던 무리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도들인 것입니다. 거기에 대표적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수제자도 뜻이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나섰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뜻이 원하는 길을 끝까지 갔지마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그 외의 사도들은 뜻이 원하는 길을 다 가지 못한 역사적인 서러움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3년 공생애노정을 예수님과 더불어 같이 자고 먹고 지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바라보는 뜻과 제자들이 바라보는 뜻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라보는 나라와 제자들이 바라보는 나라에도 거리가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이 바라보는 세계와 제자들이 바라보는 세계에도 거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보는 관에 따라서는 크다면 큰 거리가,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을 우리는 추측할 수 있습니다.

개인 개인으로 보면 예수님도 하나의 개인이요, 베드로 같은 사람도 하나의 개인이었지만 개인 자체를 두고 볼 때에도 거기에는 거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는 개인은 역사를 대표한 개인이요, 시대적인 중심의 개인이요, 미래의 선의 기수로서 당당히 출발할 수 있는 개인이었지만, 베드로라는 개인은 역사를 대표할 수 없는 개인이요, 시대의 중심의 사명을 할 수 없는 개인이요, 미래의 새로운 선의 출발을 제시할 수 없는 개인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다른 입장에 섰기 때문에 가는 길도 달랐습니다. 바라보는 표준도 달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도 달랐고, 추구 하는 목적이나 대상도 다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다하는 자리에서 뜻을 세우려고 했지만,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제자들은 죽음을 싫어하는 자리에서 뜻을 저버린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 당시 같은 환경에 처한 사람이었지만, 밥을 먹어도 같이 밥을 먹고, 행동을 하여도 같이 행동을 하였지만, 뜻을 중심삼고 바라보는 그 기준이 달랐기 때문에,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사이에는 판이한 생활의 결과가 나타났고, 그런 결과를 맺고 간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