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상대의 역할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5권 PDF전문보기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상대의 역할

이렇게 보아 인간 세상에 있어서 중요한 사항, 중요한 일이 결정되는 데는 그 일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세계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문제를 두고 봐도 마찬가지예요. 아벨이 책임완수하는 것은 누구에게 달려 있느냐? 아벨에게도 물론 있지만 가인이라는 상대적 존재가 이것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냐. 또, 노아를 보더라도 노아가 심판 이후에 그 심판한 목적을 성사시키는 문제도 노아 자신에게 있는 것보다도 그 아들에게 달려 있었던 것이 아니냐.

아브라함이 뜻 성사의 길을 가려 가는 것도 아브라함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제물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냐. 야곱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야곱이 21년노정 가운데 뜻 성사를 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그 결정적 요인은 야곱 자신에게 있었던 것보다도 상대적 환경에 있었던 것이 아니냐. 즉, 라반을 굴복시켜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라헬이 라반의 우상을 숨겨 가지고 나올 때 이것이 만일 발각되었다면 야곱뿐만 아니라 야곱의 일가의 뜻 성사는 여기에서 완전히 실패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중요한 사건들, 복귀섭리에 있어서 중요한 사항들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모세가 망한 것은 자기 자신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석판을 깨뜨렸기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들지 못한 것도 자기 자신보다도 환경적 사항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볼 때 친척의 동생 뻘 되는 그 예수를 메시아로 모신다는 것은 힘든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볼 때, 결국은 상대적 사항이 언제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데 요인의 역할을 해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자신을 봐도 예수 자신이 잘못해 가지고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지 않느냐.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 환경이 잘못 됐기 때문에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냐. 이렇게 쭉 따져 보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복귀섭리를 담당한 그 시대에 있어서 책임완수를 결정하는 데는 어디까지나 본인 자신(책임자)을 중심삼고 문제가 되어진 것이 아니라 상대적 요인이 중요한 사항 결정에 있어서 문제가 되어진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상대적 요인을 앞에 놓고 볼 때, 그것을 무엇 무엇으로 귀결할 수 있느냐? 그것은 사람과 물질 문제, 단적으로 따져 보면 사람과 물질 문제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 사람과 물질을 벌여 놓은 것이 환경이 되는 것이 아니냐. 여기에 엉클어진 사연을 통해서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것이고 인생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상적 요인이 뭐냐면 사람과 물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 과정에 있어서는 이것을 무시할 수 없고, 그리고 이것과 그 섭리를 담당한 사람이 언제나 하나되어 있다는 절대적 조건을 확보하지 않고는 뜻을 성사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종적인 복귀섭리노정을 두고 볼 때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섭리 과정 가운데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가 있었습니다. 구약시대는 물질을 제물로 드리는 때요, 신약시대는 사랑 하는 아들,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많은 피를 흘려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상대적 환경과 상대적 여건이 복귀섭리에 있어서 얼마나 중차대한 것인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 상대적인 여건을 어떻게 움직여 가지고 자기 앞에 일치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복귀섭리의 중요한 사항이 되어 있는 것을 여기서 우리는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복귀섭리의 길은 하나님의 이상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상 완성은 왜 하느냐? 하나님이 기쁘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쁘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혼자서는 기쁠래야 기쁠 수 없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기쁠래야 기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은 절대자로서 무엇이 부족해 가지고 사람을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것은 기쁘기 위해서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기쁘려면 마음이 통하고 몸이 통하는,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서만 기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