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아시아와 세계에서 자리 잡기까지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74권 PDF전문보기

한국이 아시아와 세계에서 자리 잡기까기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대표적인 탕감적 사명을 해야 할 나라가 어떤 나라냐? 한국이다 이거예요. 이 2차 7년노정은 예수님이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실체적으로 국가를 안고 넘어가느냐, 못 넘어가느냐를 결정지어야 할 때와 맞먹는 기간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2차 7년노정을 중심삼고, 한국이 9월부터 4개월 동안에 세계무대에서 보이코트당하느냐, 아시아 무대에서 보이코트당하느냐 하는 절박한 운명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고요. 예수님이 국가기준을 넘어갈 때. 실체기준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망했거든요. 한국 자체가 이런 과정을 거쳐 나가기 위해서는 실체적 기준을 세워야 하는데, 여기에서 한국이 아시아에서 존재하느냐, 세계에서 존재하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대회를 치른 1974년 9월 18일부터 시작되는 이 기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20일 동안에…. 10일 전부터 시작한 거예요. 결국은 일본이 문제가 되어 가지고 아시아에 있어서 한국이 고립된 입장에 들어간 거예요. 전부 다 포위당해 가지고 중공하고, 일본하고 하나되고, 중공하고 북괴하고 하나되어 가지고 한국을 밀어내는 때라는 거예요. 총동원해 가지고 반대한다는 거예요. 그쪽으로 하나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난국에 처해 있습니다.

자, 그러한 문제가 있어서 한국 문제가 긴박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다나까 수상이 이 워싱턴에 올 때, 우리가 데모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지금까지 배후에서 투쟁을 했는데 거기에서 선생님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어요. 여러분은 모르지만 국무성과 한국 대사관이 책임지겠다고한 문제까지 우리가 데모로 무마시킨 일로부터 전부 다 해 가지고 한국 자체가 선생님 앞에 실체적으로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는, 부탁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딱 서 있다 이겁니다. 그때 한국이 전체를 나한테 부탁하지 않을 수 없지요. 여러분은 다 모르지만 한국 대사관의 제일 책임자 되는 사람이 선생님한테 찾아와 가지고 인사도 하고 고맙다고도 했습니다. (박수) 또, 한국정부에서도 사람을 보내 온 거라구요.

그걸 보면 영적 세계기준으로 연결되는 이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승리적 기반 위에 육적인 한국의 기반이 연결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한국에서 온 손님들까지도 거기에 참석했다는 거예요. (박수)

이러한 내적 싸움과 동시에 한국은 아시아에 있어서 자리를 잡았고, 이제는 뭐냐 하면 한국 문제가 유엔의 문제, 세계적인 문제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공산권에 있어서도 제일 악랄한 북괴 김일성이가 유엔총회에서 한국에 주둔한 유엔군 해체 문제를 중심삼고 나왔는데, 이것은 민주세계의 마지막을 말하는 것이요, 민주세계의 이상실현의 끝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유엔군 해체 문제를 들고 나왔어요. 유엔총회에서 이것을 제한한 국가가 북괴를 포함하여 34개 국가였고, 남한의 주장대로 그냥 연장하자는 국가가 22개 국가였습니다. 이렇게 현격한 차이가 벌어졌기 때문에 유엔에서는 한국 문제에 있어서는 북괴가 대승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표현이었다구요. 세밀하게 얘기할 시간이 없다구요.

금년에도 이러한 세계사적인 문제, 유엔 도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을 선생님이 미리부터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그 문제를 중심삼고 일본 부인들이 인도주의 문제를 들고 나와 가지고 유엔 도상에서 이것을 트릭(trick;간책, 기만)같이 반대로 투입하다시피 해 가지고 50개 국에 해당하는 지지 성원국을 우리가 갖게 됐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에 널려 있던 통일교회 교인들, 서구 사람들과 아시아 사람들을 합한 750명이 모여서 일주일 동안 금식을 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문제였습니다. 제일 긴박한 문제였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북괴입니다. 북괴를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문제였습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우리의 모든 작전에 의해 어떻게 도망갈래야 도망갈 수 없고, 피할래야 피할 수 없게끔 완전히 포위당한 거예요. 자, 이래서 12월 8일을 중심삼고 두 번 투표했는데, 한국에서 제안한 것이 61대 42로 한국이 승리했고, 그 다음에는 북괴가 제안한 것이 48대 48로 동점이 되어 결국은 한국이 승리했어요. 그래서 한국에 유엔군을 그냥 두게 된 거예요. 민주주의가 거기서 승리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승리한 거라구요. 그게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가 됐습니다. 레버런 문이 거기에 문제에 가담을 안 했더라면 그건 문제도 안 됐다는 거예요. 세계의 모든 대사들, 거기에 참석했던 업저버(observer;관찰자, 참관인)는 물론이지만 한국의 관계 당국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딱 결정적인 조건이 됐던 거예요.

국가적 기준을 중심삼은 영육 기반과 세계적인 기준에서의 영육 기반, 이 양면의 탕감조건을 우리가 세울 수 있었다는 결론을 거기서 얻었던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이제 그러려면 그 육적 영적 기준의 탕감조건을 세워 놓아야 된다구요. 세계 적인 영육기준이 아직까지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연결시켜야 됩니다. 그것을 위해 8개 도시의 강연회가 끝남과 동시에 한국에 돌아가 가지고 세계사적인 기준에서 영육을 중심삼은 세계적인 선포를 할 것인데 그것이 제3차 7년노정이 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래서 결국은 영육을 중심삼은 국가적 출발을 할 수 있는 조건 기반을 이미 완결했다는 결론이 성립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