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의 소원은 하나님의 심정기준에 연결되는 것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82권 PDF전문보기

피조물의 소원은 하나님의 심정기준에 연결되는 것

완전한 플러스가 있다면 완전한 마이너스는 이 우주에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렇지요?「예」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겨나면 완전한 플러스는 자동적으로 생겨나게 돼 있습니다. 인간 구원의 가능성도 거기에 있다구요. 완전한 양심기준만 가지면 완전한 몸의 기준은 나온다구요. 그것만 알게 된다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구요. 완전한 양심기준만 확정짓는 날에는 몸뚱이는 자동적으로 거기에 상대적 조건을 구비해 가지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을 콘트롤하는 것이 난해한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자연적인 것으로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준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무슨 창조계획이 아니예요. 무슨 사업계획이 아니예요. 사업을 하는 것은 왜? 사업이나 일을 하는 것은 기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든 것도, 천지를 창조한 것도, 모든 것은 기쁘기 위한 것입니다. 기쁘려면 심정문제, 사랑문제, 정서적인 문제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하신 하나님이 심정을 중심삼고 지었기 때문에 그 지어진 물건은 그 심정을 통한 목적의 결과의 자리에 가야 합니다. 그것이 필연적인 운명입니다.

그러므로 심정의 기원에 일치된 자리에서 출발해 가지고 심정의 목적의 자리까지 가는 날에는 돌아가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자동적으로 돌아간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돌아야 하는데 거꾸로 돈 것이 타락입니다. 타락은 무엇이냐 하면 천리를 따르는 사랑으로가 아니라 타락한 고깃덩이, 육신을 위주로 한 사랑으로 전부 둘러싸여 있는 것입니다. 거꾸로 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이와 같이 둘러싸여 있는 것을 그냥 시인해 가지고는 안 되겠기 때문에 완전히 부정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부정해라 이거예요. 이런 논리예요.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는 몸과 연결된 전체의 상황을 완전 부정시키는 데서만이 출발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 남편이 귀하고, 내 자식이 귀하고, 내 아내가 귀하고, 내 부모가 귀하지만 보다 귀한 것이 무엇이냐? 인간 본연의 양심의 중심인 하나님의 심정이 보다 귀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심정의 그 깊은 곳을 어떻게 찾아가느냐? 여기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 거리를 지나 그곳에 도달해야 됩니다.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모든 것을 투입해야 됩니다. 모든 것을 투입해야 돼요. 이런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통일은 둘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통(統)'자는 거느릴 통 자라구요. 주체성이 있다는 거예요. 거느린다는 것은 주체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연합이 아니예요. 통일입니다. 다르다구요. 통일은 어디까지나 주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날 퉁일교회는 연합교회가 아닙니다. 통일교회라구요. 주체성을 갖고 있다구요. 그 주체의 근원이 어디냐? 문 아무개의 심정적 기원을 통한 주체가 아닙니다. 문 아무개도 다 흘러가지만, 영원히 남아야 할 절대적인 신의 심정의 기원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그러지 않았다면 일시적인 혼란상을 일으켰다가 흘러가는 종교가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다는 거예요.

심정기준을 중심삼고 연결되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피조물의 소원입니다. 인간만이 아니라 피조물, 개미 새끼까지도 그러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심정세계에 들어가면, 동네방네 저 산에 사는 새들도 그집, 그 사람 가까이에서 살려고 하고 말이예요, 동물들도 그 집 가까이에 와서 잠을 자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거 무슨 말인지 이해돼요?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만물을 주관할 수 있지, 뭐 호랑이든 사자든 전부다 주관할 수 있지 오늘날처럼 총칼 가지고 이런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만물이 전부 다 그 심정에 통일되기를 바라고 지배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