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을 인도할 수 있는 길을 찾다 보니 유명해졌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26권 PDF전문보기

천운을 인도할 수 있는 길을 찾다 보니 유명해졌다

그러면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여러분과 이목구비가 마찬가지이고 아무것도 다른 것이 없습니다. 보면 좀 뚱뚱하고, 힘에 있어서는 여기에 모이신 분 가운데 80퍼센트 이상은 내가 능가할 수 있다고 보고, 체격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체격을 가졌다고 보지만, 얼굴은 그리 잘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면으로 볼 때에 자랑할 것 아무것도 없는 이와 같은 장본인이 어떻게 되어서 지금에 와서는 세계적으로, 나쁜 의미에서든 좋은 의미에서든 레버런 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이만큼 유명하다면 유명하게 됐습니다.

자,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되어서 이렇게 됐느냐? 여기서부터 말씀을 해보겠습니다. 이런 말 하면 속되다고 하겠지만, 운이라는 게 있잖아요? '에이! 저거 뭐 무당 푼수와 같은 게…' 이렇게 생각해도 좋습니다, 터놓고. 속된 말로 '오늘 운이 좋았다!'라고 하지요? 아마 학자님들도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데 오늘은 운이 좋을 거야' 할 때가 있을 겁니다. 결국은 자기도 모르게 좋을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는 겁니다. 좋을 수 있는, 행복할 수 있는 터전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니겠습니까?

공자님은 '위선자(爲善者)는 천보지이복(天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보지이화(天報之以禍)라' 했습니다. 또, 예수님 같은 양반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있으니 나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또, 석가 같은 이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다' 했습니다. 그런 주장이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한 것이냐?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또 다른 주체를 두고, 주체와 상관관계에 있어서 그런 경지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천의(天意)라는 게 있습니다. 또 천도(天道)가 있습니다. 천도는 천운(天運)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천도를 움직이는 그런 주인 되시는 분이 있다면, 우리가 막연하게 이름을 붙이더라도 철학적 술어로 절대자라든가 종교적 술어로 하나님이라든가 하는 그분이 있다 하는 문제, 이것이 지금까지의 문제인 것입니다. 여기 서 있는 본인도 그런 문제에 부딪혀 심각히 몸부림쳐 가지고 그것을 탐구하고 모색한 역사시대의 한 사람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다면, 천도를 세워 천운을 행사하면서 세계를 끌고 나가는 주인이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하나님으로서 보는 인류가 복을 받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고 이상세계를 찾아갈 수 있는 그 길, 하나님이 끌고 가는 운의 길이 어떤 것일 것이냐? 그게 문제입니다.

아무리 개인이 운을 잘 타고났다 하더라도 가정에 화가 부딪히게 될 때는, 개인이 속한 가정 전체에 화가 닥치게 될 때는 개인의 운 가지고는 막을 수 없습니다. 가정의 운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사회에 악운이 몰아치게 될 때는 거기에 피해를 입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사회의 운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국가가 존망지추(存亡之秋)에 서 가지고 비운에 부딪치게 될 때는 그 사회의 운도 거기에 휩쓸리고 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국가의 운을 올바른 길로 지금 이끌고 나간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운보다 더 큰 세계적인 비참한 운세가 몰아치게 될 때는, 아무리 좋은 운을 가지고 행복한 자리에 섰더라도 그 비운의 역사에 휘말려 감길 수 있는 것이 역사적 실정이 아니겠느냐. 아무리 세계의 운이 크다 하더라도 천운이 몰아닥치게 될 때는, 천운 앞에 세계의 운세도 자세를 가리지 못하고 자리를 양보해야 할 입장에 설 것이 아니냐, 이렇게 봅니다.

천운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이 영원히 우리의 본연의 정도로 인도할 수 있는, 개인·가정·사회·국가·세계, 혹은 통일교회 술어로 천주, 하나님까지 항복할 수 있는 절대 불변의 길이 있겠느냐, 없겠느냐? 절대자이신 하나님이라면 이것이 없다고 하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절대 있어야 됩니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은 그러한 문제를 탐구 모색하기 위해서 노력한 한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