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중심삼고 측정하는 현세계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39권 PDF전문보기

자기를 중심삼고 측정하는 현세계

그러면 인간은 왜 하필 어려운 길을 가야 하는가? 우리 그렇잖아요? 배고프면 먹고 싶은 거예요. 동물 같으면 먹기 위해서는 생명을 걸고 투쟁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배고파도 마음대로 먹지 못합니다. 남의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사회규범이 있습니다. 그 규범에 비준해 가며 규범화한 기반 위에서 하려고 하지 그 아래에서는 안 한다 이겁니다. 그런 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인간은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높이 올라가기 위한 것입니다.

높이 올라가는데 어떻게 높이 올라갈 것이냐? 15도 각도로 가야 되겠다, 45도로 가야 되겠다, 수직으로 가야 되겠다 하는 이런 문제가 대두되는 것입니다. 뒤로 가겠다는 생각은 안 하지요. 그건 뭐 옛날의 종 같으면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말이예요. 90도를 중심삼고 가는데 어디로 가야 되느냐? 90도 가까운 데로 따라가야 된다는 거예요. 45도 이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45도. 여러분, 사사오입(四捨五入)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90각도에 절반 되는 45도 경계선을 넘어야 두 편에서 한 편으로 치우친다는 것입니다.

이 45도라는 것은 선악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완전히 선권으로 못 넘어간 것이라는 거예요. 45도는 완전한 선편이 아니고 악편에 치우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냥 놔두면 악편으로 떨어진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45도를 넘으면 어떻게 되느냐? 떨어지더라도 45도의 줄을 타고서 딴 경지에 떨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45도 이상은 넘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도의적 세계라든가 윤리 도덕권을 중심삼고 볼 때, 45도 선이 확실한가? 15도 되는 도덕, 45도 되는 도덕, 그다음엔 75도 되는 도덕, 그렇게 누가 말해요? 90도 되는 도덕이라고 그 누가 얘기를 합니까? 자기들은 말이지요, 15도 가면서도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5도 되는 사람이 '야, 이 녀석아! 90도가 왜 그래?'라고 하게 마련입니다. 전부 다 누굴 중심삼고 측정하느냐 하면 자기를 중심삼고 측정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에, 대한민국의 법, 대한민국의 규범을 중심한 습관성, 그리고 문화전통 배경이 다른 기준에서 습관화된 세계의 제도권을 이루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이니만큼 대한민국 사람은 대한민국을 갖고 측정한다는 겁니다. 세계를 모르니까. 대한민국 이상은 모르니까 그건 믿어야 돼요.

대한민국에서만 사는 사람은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희생하지만, 세계에 나가 보고, 아시아에 가 보고, 일본에 가 보든가 중공에 가 보든가 아시아 지역을 돌아보고 세계를 쭉 돌아보고 세계를 아는 눈을 가지고 볼 때는 대한민국만 위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러나 세계를 전부 다 돌아보고 세계 각국과 비교 검토해서 '제일 좋은 것이 되려면 이래야 되겠다' 하는 관을, 즉 국가적인 기준을, 세계적인 기준을 떡 갖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이 세계를 쭉 돌아보고 와서는 말하기를, '아 이것 한국이 틀렸어! 뜯어고쳐야 돼!'라고 하면 문제가 되는 거예요.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변화시키면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하루 24시간이 말이예요, 아침이 됐다가 갑자기 밤이 되면 어떻겠나? 생각해 봐요, 얼마나 기가 막히겠나? '아침 밤, 밤 아침' 이러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변하더라도 서서히 변해야 된다구요. 서서히 변화하면 모른다구요. 지금 시간이 가고 있습니다. 똑딱똑딱 시간은 자꾸 가고 있지만 그건 느껴지지 않는다 이겁니다. 지금 선생님이 말한 이 시간도 지금이고, 지금도 지금이예요. (웃음) 아까 말한 얘기는 벌써 옛날이고 미래의 것이 꼬리를 물고서 기계 돌아가듯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볼 때에 문제가 크다는 겁니다. 누굴 중심삼고 재느냐? 그런 결론이 나와요. 선악의 측정이란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누굴 중심삼고 재느냐? 대학교 다니는 여러분들이 경제학과를 다니면 '경제학을 중심으로 재지' 하고, 물리학과에 다니면 `물리학을 갖고 재지!' 이러지요? 전부가 이러고 있다 이겁니다.

지금은 무슨 학문이고 뭣이고 모두가 복잡해졌습니다. 요즘은 대학에도 수백 학과가 있잖아요? 점점 많아질 거예요. 앞으로 점점 많아질 거라구요. 옛날 전문화 안 되었을 때는 한 사람이 전부 다 했다구요. 한 사람이 다 했지만, 지금은 분과되었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이 하던 것은 전부 다 우습게 안다구요. 그렇지만 전문화되면 될수록 인간의 취미를 중심삼고 재미있느냐 하게 되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재미라는 것은 다양성이 있어야 돼요. 다양성이 서로 바꿔지면서 작동하는 데 재미가 있어요. 그렇잖아요? 자극이라는 것은 한 가지 단조로운 것으론 되지 않아요. 같은 형이 작동을 하면 재미가 없다구요. 복잡한 것들이 서로 부딪칠 것 같은데 부딪치지 않고 참으로 복잡다단한 사방성, 그다음에 순환성, 입체성으로 작동하면서 변화가 집약돼 가지고 급변하는 환경에 부딪치게 될 때 자극을 느끼고 재미를 느끼는 거예요.

그건 복잡하다는 겁니다. 복잡하고 크고 넓다는 거예요. 그런데 단조로운 것은 좀 세분화되어서 전문화된다면 말이예요, 한 가지밖에 몰라요. 한 가지만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러한 기준에서 이 세계를 측정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해요. 미국 같은 데 가 보게 된다면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말하면, 못을 하나 박으려는데 여기에 해머가 있고 저기에 못이 있다구요. 그런데 박는 것은 보통 사람은 안 박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못 박는 걸로 돼 있다 이거예요. 그건 반드시 못박는 전문 기술자가 와서 박아야 됩니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불편해요! 우리 같은 사람은 못이 없어 못 박지 있으면 다다닥 박는다구요. 박아 놓으면 별것 있어요? 마찬가지지요.

그렇게 재미가 없다는 겁니다. 어디에 다니는 것도 흔히 뭐라고 할까요, 기계의 한 작동과 같이 같은 공정 자리를 왔다갔다하는 놀음을 하고 있으니 재미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게 세분화되면 될수록 그 세분화된 기준을 중심삼고 자기가 아무리 세계 제일이고 여기서 절대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기준이 세계의 모든 사회라든가 모든 세계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겠느냐? 절대 안 됩니다. 알겠어요? 「예」

경제학을 공부한 녀석들은 경제학을 갖고 자랑하지 말고, 물리학 한 녀석들은 물리학 가지고 세계에 어떻다 하고 자랑하지 말라 이겁니다. 철학을 한 사람은 철학을 한 눈깔 같아요. 명태는 명태 눈깔 가지고 보지요? (웃음) 철학한 사람은 철학 눈깔 가지고 봅니다. 이렇게 깜박깜박…. 그 측정이 완전한 게 아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