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사랑으로 통일돼야 세계가 통일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42권 PDF전문보기

개인이 사랑으로 통일돼야 세계가 통일돼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외부에서 암만 통일됐다 하더라도 여러분이 통일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 통일의 세계에 흡수될 수 없어요. 문제는 내 자신부터 통일해야 돼요. 내 자신이 하나되어 있어야 통일을 맞이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 패턴을 갖출 수 있는 발판을 닦아야지요. 여기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문제가 생긴 거예요.

그러면 사람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려고 하느냐? 그게 문제예요. 하나되는 데는 무엇 가지고? 지금까지의 역사를 두고 볼 때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하느냐 이거예요. 오늘날 경제인들은 경제 가지고 통일하자, 부처끼리 경제 가지고 통일하자 하는데 좋다구요. 그래, 통일하는 데는 각자의 저금통장을 가지고 갑이라는 여자와 을이라는 남자가 하나는 저쪽 방향, 하나는 이쪽 방향에 있어 가지고 통일이 돼요? 경제 가지고? 경제력을 가지고 하나되자 해서 돈 보따리를 갖다 놓으면 싸움만 벌어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권력 가지고 하나되자! 하나될 수 있어요?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다이아몬드를 보물로 알고 있는데, 다이아몬드가 왜 보물이예요? 굳은 데 있어서는 변치 않기 때문입니다. 또 황금이 보물인데 왜 보물이예요? 그 누런 빛에 있어서는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자주적 절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진주를 보게 되면 말이예요, 조화된 빛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갈아서 진주알이 닳아진다 해도 그 빛은 침해를 받지 않아요.

불변의 소성을 가진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우리 자체가 변하지 않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 대해서 잘 변하는 선생님을 좋아해요? 변하지 않는 선생님, 변하지 않는 남자, 변하지 않는 아내, 변하지 않는 자식, 이것을 찾고 있어요. 무엇을 중심삼고 변하지 않느냐? 이것이 중요한 문제예요.

인간에게서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겠느냐? 보물이예요? 보물이야 대상적 존재이니까 제일 귀하다고 볼 수 없겠지요. 내 자체를 중심삼고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여러분에게 추리해 내라 하면 사랑하고 생명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사랑이 먼저예요, 생명이 먼저예요? 이렇게 묻게 된다면 사랑이 먼저라고 모두 대답하실 거예요. 누구 사랑? 내 사랑이 아니예요. 부모의 사랑이 없었다면 나는 태어날 수 없습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이 자기를 절대시하고 자기를 옹호하는 자주적인 주관성, 통괄성이 도대체 어디까지냐 이거예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변치 않는 부모의 사랑의 뿌리를 받아 태어난 나라는 존재는 부모의 사랑의 동참자라는 것을 몰라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 말이 맞아요? 참된 부모의 사랑, 그 부모의 사랑은 우주와 통할 수 있는 거예요. 우주가 바라던 모든 본질적 요소가 되어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그 요소의 뿌리를 담고 있음과 동시에 부모님의 사랑에 당당코 동참한 대신자라는 거예요. 이 사랑의 논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나를 절대시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로서 여러분도 추리해 낼 수 있는 것인데, 여러분은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왜? 부모님의 사랑의 동참자이기 때문에. 그러니 아버지 어머니는 나를 부정할 수 없어요. 만일 부정한다면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 되고, 남자와 여자가 태어난 본래의 창조원칙을 부정하는 거예요. 존재의 영육을 거부해야 돼요. 엄청난 배후의 사실이 파괴적 노선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자랑할 수 있어요? 이 참된 사랑은 어디라도 가는 것입니다. 국경이 없어요. 역사를 초월하고 우주를 초월하는 거예요. 그렇게 보는 거예요. 사랑의 힘은 위대한 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지금 이만하면 부러운 것이 없지요, 뭐. 안 그래요? 출세했다면 출세했다고 볼 수 있어요, 이제. 어디 가더라도 잘났다는 사람들이 존경하려고 하고, 다 웃사람으로 대접하려고 하고, 귀하게 여기려고 해요. 아무리 훌륭하고 성공했다 하더라도 내 자신이 사랑에 결여된 자리에 서게 될 때는 불쌍한 사람이 된다구요. 안 그래요?

훌륭한 교수님들이 여기 계시지만, 잘살더라도 혼자 되어 가지고 있으면 불쌍하다고 한다구요. 뭐 학교 강단에 서면 명강사라도 혼자 따라지로 딸랑딸랑 집에 돌아가게 되면 '아이고, 불쌍한 교수'라고 하지, 훌륭한 교수니 본받을 교수라고 해요? 동정받을 교수라고 하지, 동정할 교수가 아니라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사랑에 불합격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