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사랑을 중심으로 모든 인류가 같이 살아 나가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48권 PDF전문보기

참된 사랑을 중심으로 모든 인류가 같이 살아 나가야

오늘 여러분들은 '거 문선생이 무슨 얘기를 할까? 뭐 종교 지도자니까 그냥 무슨 강연이나 설교 같은 얘기를 하겠지' 할 것입니다. 물론 설교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오늘 이와 같은 말을 하는 레버런 문에게 적용해 보자구요. 레버런 문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 무얼하는 사람이냐 이거예요.

아무리 산곡에 혼자 앉았다 하더라도 애국자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민족과 더불어 같이 살고 싶다. 같이 있다. 민족이 어려울 때는 그 어려움이 나와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 일이다, 내 앞의 일이다, 기쁨이 지나가는 기쁨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으로 남아질 수 있는 우리의 기쁨이다, 슬픔이 한때의 슬픔이 아니라 영원한 슬픔이요, 우리의 슬픔이다' 이렇게 못을 박고 다짐지을 수 있는 참된 심정의 터전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레버런 문이라는 한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의 하나의 종주로서 세계적인 종교계에 문제의 인물이 되어 가고 있지만 통일교회 교인들과 문 아무개는 무슨 관계냐? 간단한 것입니다. 그대와 나와는 참으로 같이 살고 싶다는, 참으로 같이 살고 싶다는 …. 내가 나이가 많다고, '당신은 육십이 넘었으니 이제는 정년 퇴직해서 물러가십시오' 하지 않는다구요. '물러가면 나도 따라가고 싶다' 하는 거예요. 이러한 유대관계가 보이지 않는 통일교회 배후에 있다는 거예요. 개인을 넘어서, 통일교회 가족을 넘어서, 통일교회 종족권을 넘어서, 민족권을 넘어서, 세계를 넘어서…. 이게 문제입니다.

세계에 어떤 저명한 학자가 있으면, 그 저명한 학자와 더불어 같이 살고 싶다고, 그 저명한 학자도 자기가 사랑하는 제자들과 같이 살고 싶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늘을 걸어, 자기 나라를 걸어, 자기 직장을 걸어, 자기 생활하는 가정을 걸어, 전체를 대표해서 '나는 놓고는 못 살겠소' 할 수 있는 그런 세계적인 대학자가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 아니예요. 거기에서 비로소 행복한 교수가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것은 간단한 내용이지만 여러분 마음세계 생활에 있어서, 일상생활에 있어서 이러한 내용의 중심무게를 측정할 줄 알아야 됩니다. 내가 애국자냐? 효자냐? 성인은 못 되어도 성인의 반열을 따라갈 수 있는 추종자가 되느냐? 성자의 자리에는 못 서지만 추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느냐 할 때, 그 공통분모의 내용이 무엇이겠느냐? 참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 그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참 중의 참사랑입니다. 자식이 기뻐하면 그 자식보다 더 기뻐하는 게 부모라 이겁니다. 자식이 슬퍼하면 그 슬픔의 아픔을 그 자식보다도 더 느끼는 것이 부모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선 것이 참을 대표한 부모의 자리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러면 참된 주권자는 누구냐? 선군이 뭐냐? 마찬가지예요. 성인의 도리가 무엇이냐? 만민과 더불어 역사시대를 넘고 넘어 초역사시대에서 같이 살고 싶어하는 것이 성인의 도리입니다. 더 나아가서 성자의 도리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천리의 정수가 무엇이냐? 만유존재와 더불어 깊은 자리에서, 높은 자리에서, 넓은 자리에서 같이 살고 싶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거기는 좋고 나쁨을 초월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랑을 공통분모로 삼은 인연이 너와 내가 참되게 살고 싶은 행복의 기틀이 아니겠느냐.

고명한 선생님들 앞에 오늘 저녁 이것을 제시합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애국자가 되어 있느냐? 애국자가 되기 전에 애국자인 양 비판하지 말라는 겁니다. 성인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심정적 사랑의 인연을 갖지 못하고는 성인의 도리를 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 그것은 외식이 되기 때문에, 이중 인격이 되기 때문에, 하나의 자리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는 간단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하나되기를 바라며 남북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오늘 이것이 뭐예요? 남북통일운동연합, 좋아요. 이름은 거창하고 대사회의 명분을 가질 수 있는 표제를 갖고 나왔지만 이북에 가 가지고 여러분들이 그들과 더불어 같이 살고 싶으냐 이거예요. 40년이란 세월이 해방 후에 지나갔는데 그간에 이북을 얼마나 생각해 봤느냐 이거예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러기가 쉽지 않다구요. 우리 같은 사람은 고향을 이북에 갖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아 이거 이북과는 반대되는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 사람들은 이북은 먼 나라와 같이, 지나가는 하나의 나라와 같이 생각될 수 있는 처지라구요.

'진정히 진정히 우리들 참으로 같이 살고 싶어' 할 수 있는 마음을 회생하지 못한다 할 때는, 또 하나의 외식의 단체를 형성해 놓고 역사의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철부지가 되는 것이 아니냐. 나는 이런 것을 주장하는 창시자로서 염려하는 마음뿐입니다. 이제 몰랐으면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거예요. 몰랐으면 부끄러움을 모면할 수 있다는 거예요. 대우주의 천리 앞에….

이제 오늘 레버런 문이 제시한 이 말을 중심삼고 여러분들은 책임소행의 추구를 그 무엇인가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말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고, 도피할래야 도피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몸부림치는 이런 놀음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예요. 내가 개인적으로 사는 생활에 있어서의 생활철학은 이것밖에 없어요.

내 어머니 아버지와 길이길이 살고 싶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살고 싶어도 나라 없는 곳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사는 것은 불효입니다. 아무리 애국자가 되어서 나라를 사랑하고 군왕을 모시고 살고 싶지만 성인의 도리와 통하지 않는 길을 가는 애국자의 길은 막힙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아무리 성인의 도리의 길을 다 간다 하더라도, 성자의 도리와 대우주의 왕국법을 중심삼고 치리하는 본국의 법에서부터 흘러나온 세계의 모든 법을 다 거치지 않고는 왕궁에서 환영할 수 없다 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