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다 나은 곳으로 가라고 늘 명령하고 있는 양심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51권 PDF전문보기

나를 보다 나은 곳으로 가라고 늘 명령하고 있는 양심

이제 여러분들이 고향에 돌아갈 때는 무엇을 가지고 가야 되느냐? 올때의 나와 갈 때의 나의 차이를 무엇으로 채울 것이냐? 뜻도 좋다 이거예요. 이념도 좋다 이거예요. 물론 그런 기준에 서야 되겠지만 그 뜻과 그 이념이 내 것으로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마음 깊이 양심의 터전위에 이 뜻과 그 소망의 실현을 일치시켜야 됩니다. 그런 기준을 세우지 않는 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마음이 살아 명령하는 곳에는 뜻이 살아 있는 것이요, 이념이 살아 있는 거예요. 과거에는 여러분들이 그런 양심의 작용, 내가 참다운 모습의 존재로 태어나 그런 욕망 명령을 들을 줄도 몰랐다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는 거예요. 어떤 나를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쉬지 않고 나에게 명령하고 있는지를 몰랐어요.

그렇지만 이제 여러분들이 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차이점을 놓고 그것을 채워야 하는데 그것은 무엇으로 채우느냐? 양심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그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이 양심을 중심삼고 올바로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를 친구 삼을 수 있는 거예요. 이 양심을 중심삼고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양심을 통하여 앞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만일 이 양심을 통하여 천지를 사랑하는 입장에 선 사람이 된다 할진댄 하나님을 움직이는 입장에 내가 설 수 있는 거예요. 즉 하나님도 양심적인 그 기준에 있어서는 친구와 같은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나요, 엄청난 그런 복된 터전이 우리 양심의 터전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런 양심의 터전을 가지고 여러분들은 얼마나 살아 봤느냐? 그걸 생각하게 될 때에 과거에 이 양심을 중심삼고 살았던 기억이 나지 않아요.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러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있어서 내 스스로의 가치를 존중하였던 과거의 삶이라는 것은 무엇이었던고? 양심에서 이탈하고, 이런 크나큰 선의 이념을 향하여 나를 끌어 주는 하나의 지도자 중의 지도자요, 친구와 같은 양심 앞에 나는 반역자인 것을 회상하게 됩니다. 이런 과거의 나를 여기서 무자비하게 충고하고 나선다는 이런 확고한 신념이 이제 떠나는 여러분 자신들 앞에 필요하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 그 차이를 발견할 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양심을 중심삼아 가지고 옛날의 나와 현격한 차이를 여기서 조성하여야 합니다. 이제부터 내가 가는 세상은 하늘나라가 아니예요. 아무리 결심했더라도 여기서 측정한 이런 양심적인 기준을 중심으로 생각해 볼 때, 과거의 나와 현격한 차이를 가졌다면 내가 이제 찾아가는 길은 천국생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이 잘못하면 `이 자식' 하며 주먹질하고 혹은 기합을 주는 지도자가 있는 것이 아니예요. 사방이 뻥 뚫려 있어요. 동으로도 갈 수있고, 서로도 갈 수 있고, 남으로도 갈 수 있고, 북으로도 갈 수 있고, 동서남북 사방이 터져 있는 거예요. 자유의 문이 열려진 것과 같은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사방으로 열려져 있는 환경이 내 자신을 보호해 주고, 내 양심에 친구의 인연을 가질 수 있는 이런 환경이 되면 모르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열려져 있는 문마다 나를 몰아서 때려 잡기 위한 원수의 얼굴이 놓여 있는 거예요. 갈 길을 잘 닦아 놓은 것 같지만 지나가다 보면 걸려 죽는 거예요.

여러분들, 농촌에서는 그런 것을 많이 보지요? 오리를 잡으려면…. 오리 철인 요즈음 오리들이 올 거예요. 이 철에는 오리를 잡기 위해서 오리가 좋아하는 먹이를 미끼로 갖다 놓는 거예요. 길을 잘 닦아 놓는 거예요.

그런 식입니다. 보이는 환경이 자연 이상의 것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우리가 대하고 있는 현실 이상의 것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그렇게 움직이다가는 자기도 모르게 그 올가미에 치여 내 자신이 낚기움을 당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제 우리 양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양심은 무엇인가?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여기에는 나와의 인연이 두터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와는 모든 것이 관계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을 중심삼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런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양심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양심을 부르짖고 나서서 참다운 무엇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 세상의 복잡한 인연이…. 전체가 양심과 화동할 수 있는 이런 내적인 조건이 못 되고, 양심에 고충을 가져다 주고 양심을 파괴시키는 이런 요소밖에 되지 못하기 때문에 양심적인 사람은 이 세상을 피하고 싶은 것이 본연의 마음이예요. 알겠어요? 「예」